[03.18] 세비야에서 마라케시로

Posted 2013. 6. 1. 21:31

 세비야를 구경한 다음 모로코에 있는 마라케시로 가는 일정의 하루. 이동 편은 저가 항공인 라이언에어로 예약했는데, 화물칸에 실을 짐은 일행 5명 중 한명만 신청했다. 그래서 일어나서는 숙소에 남겨둘 짐과 모로코로 가져갈 짐을 나누는 작업을 하였다. 돈은 어떻게 분배해서 갖고 다닐지, 노트북은 갖고 갈지, 두고 갈지, 두꺼운 옷은 얼마나 가져가야 할지 등 생각할 게 많았다.

 짐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어제 못 간 알카사르를 방문했다.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양식이 돋보였다. 그리고 넓은 정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이 아름답고 하진 않았다. 그래도 여느 이슬람 양식과 마찬가지로 벽이나 기둥, 나무문 등 여러 곳에 세심한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여러 곳을 본 후라서인지 감각이 점점 무뎌지는 거 같기도 하였다.








<이슬람 이슬람 한 알카사르>



<할아버지와 교감하는 공작>


 호스텔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햄은 역시나 짰다. 스페인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다보니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잘 안 되었다.

 모로코로 가기 위해 세비야 공항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하나에 다섯 명의 짐을 넣느라 애먹었는데, 도착해서 짐을 맡기려 하니 20Kg 초과. 다시 캐리어를 열고 몇 개 뺀 후 정리하여 간신히 통과하였다. 웹 체크인은 했고, 프린트 해 간 종이에 도장만 찍어주었다. 난 공항에서 자리를 배정해 주는 줄 알았는데, 저가항공은 그냥 아무 자리 앉으면 된다고 했다.

 공항 면세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의 보안검색이 철저했다. 가방은 물론이고 금속이 붙은 모든 것은 다 벗어야 할 정도였다. 잠바를 벗거나 벨트를 풀었고, 어떤 사람은 구두도 벗었다. 사진에는 귀걸이, 팔찌 등도 검사 대상이라고 돼있었으나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모자 쓰고 지나갔는데 모자 벗어보라며 모자 안까지 살피는 철저함을 보였다.

 면세점을 구경한 후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줄이 꽤 길게 서 있었다. 출국 심사를 하는 것이었다. 비행기 타야 되는 데 출국 심사라니. 한국에서 보안 검색 후 거의 바로 이루어진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 빨리 진행된 게 아니었는데, 만약 비행기 시각이 급박하면 어찌 처리하려고 이렇게 만들어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제의 비행기 탑승 입구 도착. 개인 당 하나의 수하물만 가져갈 수 있고, 크기와 무게 제한이 있었다. 크기를 제기 위해 쇠로 된 구조물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통과되는 시스템이다. 내 가방이 아래쪽이 좀 볼록하게 나와서 걱정이었는데 막상 안내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 내 것보다 엄청 큰 가방을 든 사람도 있었는데 통과된걸 보면 그리 엄격한 제한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입구에서 비행기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여기도 줄. 비행기에 사람이 한 번에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끊어서 올려 보내느라 줄이 길어졌다. 비행기 내부는 1등석이나 이코노미 석 구분은 없었다. 단지 앞쪽 몇 줄만 예약 석으로 지정돼서 못 앉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좌석은 예전 제주 항공 것 보다는 편하고 넓었다. 비행 도중 음료와 먹을 걸 담은 카트가 지나갔다. 당연히 서비스 인 줄 알고 얼음물을 시켰는데 3유로. 뼈아픈 공부였다.ㅠㅜ

 거의 도착하기 전 입국 카드를 작성하였다. 동생 옆에 앉은 사람이 작성 요령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큰 고민 없이 쓸 수 있었다. 영어가 역시 문제다. 그리고 알아서 도와준 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디어 마라케시에 도착하였다. 무식하게도 아프리카 하면 막연히 덥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덥진 않았다.

 입국 수속 장에 갔는데 줄이 꽤 길었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늦게 나오기도 했고, 다른 비행기와 겹쳐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처리가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몇 마디씩 물어보고,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하였다. 일일이 타이핑을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다. 나에겐 남한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비교적 빨리 끝났다. 어떤 사람들 보면 입국 카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는지 다시 무언 갈 적기도 하였고 심사원과 꽤 많은 질의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환전(유로 -> 디람, DH, dirham) 후 라씨드를 만났다. 라씨드는 친구가 소개해 준 현지 가이드다. 친구가 이 사람한테 가이드 받고 좋았다고 하기에 연락해서 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친구 말대로 착하고 조용해 보였다.

 라씨드와 운전수-아마도 내일 시내 투어 가이드인 듯-와 함께 현대에서 만든 봉고로 이동하였다. 어느 정도 가다가 내렸는데 아침에만 호텔 근처로 차가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봉고에서 내리자 어느 할아버지가 작은 손수레에 우리 가방을 실어 주시고 숙소 쪽으로 향하셨다. 이후 다시 다른 할아버지의 손수레로 짐들이 옮겨지고 그 할아버지가 숙소까지 우리를 안내하였다.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처음에는 이 할아버지들 뭔가 하며 놀랐는데, 라씨드가 안심하라는 손짓을 보내주었다.

 호텔로 가는 도중 시장을 지났는데 남대문 시장을 지나는 듯한 시끌벅적함이었다. 호텔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허름한 건물에 작은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 모텔 느낌? 방 안의 불도 어두웠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시장으로 나갔다. 사람들의 호객 행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가 동양인이다 보니 중국말, 일본말로 말을 건넸다. 가끔 강남스타일 가사나 반갑습니다를 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저녁은 꾸슈꾸슈 몇 종류와 샐러드 등 여러 가지를 시켰다. 스페인보다는 안 짜서 일단 좋았다. 그러나 꾸슈꾸슈라고 하는 밀가루 알갱이 같은 건 잘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같이 나온 양꼬치 같은 메인 요리는 괜찮았다. 직접 갈아 만들어준 오렌지 주스도 맛있었고.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많이 먹기에 시킨 수프는 별로였다. 고수 수프 같은 거였는데, 한국인 입맛에 고수는 잘 안 맞는 거 같다. 샐러드로 나온 음식에 있는 고수는 괜찮았는데, 수프로 나오니 잘 못 먹겠다. 먹으면 먹겠지만 한 접시를 깔끔히 비울만 한 맛은 아니었다. 우리 계산에 의하면 200디람이 나와야했는데 190을 받았다. 우리가 수프를 두 개 시켰는데, 하나는 거의 안 먹었다. 이걸 잘 못 나온 주문으로 알고 계산 안 한건 아닌지.


<마라케시 시장 내 식당>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올리브 장아찌, 소시지 꾸슈꾸슈, 토마토와 고수가 어우러진 샐러드, (아마) 타진>


<양꼬치 꾸슈꾸슈>


<문제의 고수 수프>


 밥 먹고 다시 시장을 둘러보았다. 호객 행위가 정신을 사납게 했고,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런 곳은 내 체질에 안 맞는 거 같다. 이곳 특징은 주인이 부른 가격을 무조건 깎고 보는 건데, 슬리퍼는 190 -> 70, 선글라스는 60 -> 30으로 흥정했다.

 숙소 비는 카드가 안 되고 현금만 된다는 다소 당황스러운 말을 들으며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제대로 지낼 수 있을지,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고생만 하다가 가는 건 아닌지,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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