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선결요건과 독소조항을 정리했고, 우리가 잘 했다고 여겨진 세 분야(자동차, 섬유/의류, 개성공단)에서의 실상도 정리했다. 이번부터 다룰 주제는 미국이 잘 했다고 하는 쪽이다. 실제로 미국이 다른 나라 협상에서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는 총력을 기울인다. 이번 글에서는 지적재산권 중 가장 문제가 됐던 의약품 문제를 정리할 것이다.
의약품 문제
1. 의약품과 지적재산권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약은 특허를 받으면 20년간 지적재산권 보장을 받는다. 약은 화학 성분이기에 분자식만 알려지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지적재산권 보장을 받으면 20년 동안은 그 약과 비슷하게 못 만들고, 그 후에 복제 약이 나온다. 복제 약은 원래 약값의 70~80%에서 결정된다.
2. 지적재산권으로 보장받았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특별히 문제될 게 있는가?
원본이 비싸면 20년 후 복제약이 나와도 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본은 왜 비싼가? 당연하게도 독점 때문이다. 불치병 약 등의 수요가 많은 약품일수록 제약 회사에서는 그 약의 가격을 더 높게 하는 게 이익이다. '저 약이면 살 수 있다'고하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 약을 사먹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3, 우리나라와 문제 생길 일이 있는가?
의약품 분야에서 약값 적정화 방안은 최대 쟁점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인 유시민 전 장관이 이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4대 선결요건 중 하나인 약값 정책과 부딪치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약값은 낮추고자 하였는데, 이는 호주의 PBS(Pharmaceutical Benefit Scheme, 의약품 급여제도)를 흉내 낸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좋은 제도니 다른 나라도 본 따서 하라고 하는 권장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시행하면 가격이 떨어지기에 미국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나쁜 제도일 수 있다.
4. 호주의 PBS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인가?
우리나라는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였다. 여기서 리스트는 약 이름이 써 있는 종이다. 의사가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할 때, 네거티브 리스트에 있는 약 빼고 다 처방해 줄 수 있다. 반면 호주는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이다. 포지티브 리스트는 여기 있는 약만 처방할 수 있다.
그러면 포지티브 리스트가 어떻게 약값을 낮출 수 있는가? 간단하다. 효능이 괜찮고 동시에 약값도 적정한 것만 리스트에 집어넣으면
된다. 내리라는 요구를 듣지 않으면 리스트에 넣어 주지 않고, 의사들은 리스트에 없으니 처방할 수 없게 된다. 한 알도 못 팔게
되니 세계적인 제약 회사라고 해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호주는 2004년 미국과 FTA 협상을 한다. 미국은 PBS를 강력하게 공격하고, 반면 호주는 최선을 다해 막았다. 대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특허 허가 연계, 자료독점권, 특허지연보상, 재심위원회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모두 미국법이다. 미국 법을 호주가 받아들인 것이다.
5. 특허 허가 연계는 무엇인가?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약의 시판 허가를 내주는 곳은 식약청이다. 그런데 이제는 특허청과 연계하라는 것이다. 특허청에 자료를 먼저 보내면 특허청에서는 기존 특허를 침해했는지 확인하고, 만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제약 회사에 통보한다.
그러면 제약 회사는 약이 시판되기 전에 소송을 할 수가 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그 약은 시판할 수 없다. 보통 미국에서 30개월 정도 걸리는데, 시판이 적어도 2년 6개월 늦어지게 된다.
6. 자료독점권은 무엇인가?
약에 특허를 20년 주는 이유는 약을 개발하는 데 2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인체에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물실험, 임상 실험 등 굉장히 많은 실험을 걸친다. 이 모든 자료는 특허를 받기 위해 특허청에 제출하게 된다.
이걸 복제 약을 만드는 곳에서 보면 매우 편해진다. 동등성 실험만 하면 된다거나 하기 때문이다. 자료독점권은 이런 개발 자료를 굉장히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미국의 제약 회사들은 힘이 강해 로비를 통해 법을 만들어 놓았다.
7. 특허지연보상은 무엇인가?
특허가 1년 만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 2년 만에 나왔다면 그 1년에 대해 돈으로 보상을 하든지 특허를 연장해 주는 것이다.
8. 재심위원회는 무엇인가?
포지티브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한 약에 대해 재심을 하는데 미국 전문가들이 들어간다. "진짜 전문가들인 우리들이 봤더니 약효가 40% 좋아진 게 아니라 80% 좋아졌다. 따라서 약값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도로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압력을 넣을 통로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