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4대 선결조건에 대해 얘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FTA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 한미 FTA의 네 가지 독소조항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네 가지 독소조항
1. 네 가지 독소조항은 무엇인가?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래칫(rachet) 조항, 미래의 최혜국 정책(future MFN - most favored nation),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2. 네거티브 리스트란?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조항이다.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가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르는 것인 반면, 네거티브 리스트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고르는 것이다.
이 조항의 특징은 새로 생기는 서비스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어떤 서비스가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이 제도의 무서운 점이다. 예를 들어 30년 전에 이 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인터넷 서비스를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서 새로운 서비스 분야가 생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면 이 조항이 갖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서비스 개발하면 더 이득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 면을 봤을 때 얼마나 가능할진 회의적이다. 또한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해도 불확실성을 믿고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네거티브 리스트에는 '현재유보'와 '미래유보'라는 리스트가 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예로 들겠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스크린쿼터 폐지는 4대 선결요건 중 하나였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기존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되었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에 넣어달라고 했다. 이러면 스크린쿼터 축소를 시행했을 때 한국 영화 흥행이 저조할 때 다시 146일로, 또는 그 이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크린쿼터는 '현재유보'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 되면 다시 73일 이상으로 늘릴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여기에 래칫 조항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3. 래칫 조항이란?
래칫은 톱니바퀴의 역진을 막는 장치를 말한다. 톱니바퀴에 딸깍딸깍 걸리는
작은 장치가 있는데, 이는 제 방향으로 돌아갈 땐 넘어가지만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꽉 물고 못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낚싯바늘에서 뾰족한 바늘 아래 다시 뾰족한 바늘이 있어서 한번 물린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는데 이게 래칫이다. 즉,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다.
위 문항에서 예로 든 스크린쿼터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73일을 유지했을 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정부가 이를 50일로
축소했다고 하자. 한미 FTA 협정문을 보면 '스크린쿼터 73일'이라고 써있기에 네거티브 리스트의 현재유보 리스트에 의해
50일로 줄였다가 73일로 늘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래칫 조항 때문에 50일이 상한선이 되고 73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51일로도 늘릴 수 없고, 만약 20일로 더 줄인다면 20일이 상한선이 되는 것이다. 즉,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이 조항은 모든 서비스 시장에 적용된다.
즉, 현재유보만 적용될 경우는 일수를 아무리 줄여도 협정문에 명시된 일수인 73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만, 래칫이 적용될
경우는 한 번 줄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떤 수치에 대해 무조건 하향이 기준이
되냐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만약 어떤 서비스의 효력을 5년만 인정한다고 정했다고 보자. 그런데 3년으로 줄일 경우 다시
5년으로 인정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서비스를 개발한 쪽에서는 기한이 길수록 유리할진데 이런 식이 되면 말이 안 될 듯하다.즉, 서비스의 종류나 그와 관련된 어떤 수치의 성격에 따라 줄이는 것이 손해일지 늘리는 것이 손해일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정책을 정하면서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있겠냐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궁금하다.
4. 미래의 최혜국 정책이란?
현재 한미 FTA 협정에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 준 혜택이 전부 들어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와 FTA를 맺게 된다면, 그 나라에 개방하는 만큼 미국에도 개방해야 하는데 이것이 미래 최혜국 정책이다. 이것은 한미 FTA에만 들어 있는 조항으로, 우리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이건 아무리 읽어도 믿기지가 않는다. 진짜 이런 조항을 넣었단 말인가. 사대, 사대, 이런 사대가 없을 진데,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맺은 건지. 혹시 이 조항으로 우리가 받을 혜택이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5.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은 기업이 정부가 하는 일에 불만이 있을 때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이다. 투자자가 제소하면 한국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행정법원 같은 데서 심판하면 한국 정부 편을 들 것이기에 제3의 민간 기구에서 심판을 맡게 된다. 제3의 민간 기구라고 해서 법원처럼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투자자, 국가, 그리고 그 둘이 합의해서 총 세 명의 변호사가 선임되고 이들에 의해 심판이 진행된다. 이들은 그 국가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단지 국가 간에 맺은 규약,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에 들어있는 규정을 정부가 어겼는지 만 본다.
이 제도로 실제 큰 피해를 본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약 40건의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한꺼번에 맞았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외환위기 때문에 여러 긴급조치를 취했다. 한 예로 외국 기업들에게 이윤을 송금하지 못하게 해서 달러가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달러가 나가면 자국의 돈 가치가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 기업은 이 때문에 자기 이익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40건을 제소했다. 보통 몇 백억, 몇 천억 정도의 벌금이 나온다. 이미 하나 졌고 줄줄이 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렇게 큰 사건이다 보니 세계적인 통상전문가를 고용해야 한다. 이 전문가는 대부분 미국인인데, 여태까지 미국 정부는 한 번도 안 졌다.
정태인은 앞의 세 조항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외국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국가가 지면 벌금을 내야 한다라. 쉽게 상상이 안 가는데 아래 예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듯하다.
6. 투자자-국가 제소권이 실제 발동한 구체적인 예는 어떤 것이 있나?
세계적인 특송업체인 UPS가 캐나다 우체국이 불공정 거래를 한다는 이유로 캐나다 우체국을 제소했다. 캐나다 우체국도 우리나라처럼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데, UPS 주장은, 똑같이 택배를 하는데 한 쪽은 정부에서 국가 보조금을 받고 자기는 안 받으니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우체국은 전국에 있는 우체국 망을 이용해 배달을 하는데, 이 망 자체는 국가 소유이다. 따라서 사적 기관은 이용할 수 없다. UPS는 '교차보조금에 의한 불공정 경쟁'이라고 해서 캐나다 우체국을 제소한 것이다.
만약 UPS가 이기면 캐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첫째는 UPS에도 국가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것이다. UPS뿐만 아니라 모든 택배 회사에 월급을 준다. 둘째는 우체국이 택배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편업무가 날로 줄어드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체국에서 정리해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는 민영화이다. 앞의 두 가지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니 결국 민영화를 하게 된다.[각주:1]
미국과 캐나다는 참 친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해관계 앞에서는 동지도 없다. 혈맹국이니깐, 우방국이니깐 우린 이럴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오산이라는 예가 아닐런지.
7. 우리나라도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나?
우리나라의 국가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질병의 60%를 보장해준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건강보험의 보장을 80 ~ 90%까지 올리는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놨다. 열린우리당도 암만큼은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불가능하다.
현재 미국 보험회사는 암과 심근경색 등의 질병을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 암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면 미국 보험회사 가입자들이 보험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러면 미국 보험회사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가 없고, 이 때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사용하게 된다.
책에서는 이 예를 들었는데, 어디 이 뿐이겠는가. 캐나다의 사례도 당장 우리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그 밖의 어떤 것을 걸고 들어올지 모르는 것이다.
8.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정당한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은 세 가지 측면에서 헌법 위헌이다. 첫 번째는 사법권 위반이다. 이것은 치외법권이다. 두 번째는 평등권 위반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투기 지역에 걸렸다고 행정 소송 할 수 있나? 그런데 미국 기업은 할 수 있게 된다. 미국 기업이 한국에 땅과 건물을 갖고 있다면 땅값이 올랐을 때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투기 지역으로 설정된 곳이라면 돈을 못 벌게 된다. 이 때 간접수용과 보상이라는 항목에 근거해서 제소하면 올랐을 땅값을 물어줘야 한다.
세 번째로 사회권 위반이다. 환경, 건강 등은 규제를 해야 보호할 수 있다. 새로운 독성물질이 발견됐다면 규제해야 하는데, 투자자 국가 제소권에 걸리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 독성물질이 정말 인체에 유해한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 스스로 규제를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 겁을 먹고 규제를 약화시키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가져온다.
법 해석에 있어서는, 그 이전에 법과 관련해서는 무지하니 정태인의 해석에 딱히 반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는 그렇다 해도, 세 번째 측면이 참 무서운 듯하다. 위축효과. 외국과 맺은 조약 때문에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게 참 모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