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날씨 좋은 스페인을 기대했건만, 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일정이 여유 있는 날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먼저 들른 곳은 왕실 예배당(Capilla Real)이었다.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이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사실 왕과 왕비의 관과 미술품 몇 점이 볼 것의 대부분인데 4유로나 했고, 게다가 사진 촬영도 금지된 곳이었다. 미술품 때문인 거 같아 이해는 되면서도, 그리 크지 않은, 즉 볼게 그리 많지 않으면서 4유로나 하니 좀 억울한 생각은 들었다.

 이 곳 사진도 없고, 딱히 쓸 말도 많지 않으니, 론니 플래닛에 정리된 글을 빌려 스페인 역사를 살짝 얘기해볼까 한다. 위에서 말한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은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 이전 글에서부터 스페인의 건축물이 이슬람 영향을 받았다고 많이 썼는데, 이 두 왕과도 관련이 깊다.

 BC 3세기경 로마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했다. 바로 정복하진 못 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후 몇 백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언어, 건축, 종교 등에 로마의 영향이 남게 된다. 세고비아 편에서 소개한 로마 수도교가 대표적이다.

 711년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스페인에 이슬람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쓴 글에서 이슬람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85년 까스띠야 왕국의 국왕 알폰소 6세가 똘레도를 점령하였고, 이후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 스페인을 다시 차지하기 위한 기독교도의 전쟁)이 전개되었다. 13세기 중엽 기독교 세력은 그라나다 왕국을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

 그러면서 까스띠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스페인 내 기독교 세력을 대변하는 두 강자로 부상했다. 1469년 까스띠야의 공주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위 상속자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두 왕국이 통합됐고, 두 사람은 카톨릭 군주(Catholic Monarchs)라고도 불린다. 위에서 왕실 예배당에 영면해있다고 한 두 왕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이후 1492년 그라나다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면서 국토회복운동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바하마와 쿠바에 상륙한 년도이기도 하다.

 카톨릭 군주는 스페인이 황금기로 가는 초석을 마련했지만, 스페인 이단 심문을 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수많은 마녀 사냥이 행해졌고 무수한 유대인과 비기독교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꼬르도바 편에서 아무 설명 없이 사진만 올려놓긴 했는데, 나란히 선 두 사람이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이다. 그리고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던 이사벨 여왕은 병사들에게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니 화살 하나도 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왕실 예배당에서 나오니 거의 바로 성당(Catedral)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의 성당답게 큰 구조였다. 다행히 여기서는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4유로 정도 받을 만 했다. 아까 예배당에서 사진 못 찍은 게 아쉬워서 여기서는 성당의 거의 모든 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성당은 (일부) 공사 중>











 민박집 알바가 소개해준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저 그랬다. 알바와 입맛이 다르거나, 알바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우리가 먹지 않은 게 분명하다.




<또 한 번 우연히 보게 된 세마나 산타>


<모처럼만에 본 파란 하늘>


 집시 동굴을 보러 길을 따라 갔는데, 제대로 찾지는 못 했다. 멀리 산 중턱에 사람 사는 터 같은 게 보이긴 했는데, 그걸 집시 동굴이라고 하는 거 같았다. 집시 동굴은 못 찾은 대신 알람브라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다. 목도 마르고 배도 살짝 고팠기에 야외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꽃집 같기도 하고, 요란스러웠던 집>


<알람브라를 중심으로 낮부터 밤까지>






 이 식당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거 같기도 했고, 딱히 더 먹어볼 만한 음식도 없어서 다른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라나다에서는 진짜 잘 먹고 다녔다. 그라나다 와서는 일행들이 계속 띤또 데 베라노만 마셨는데, 이 식당에서는 특이하게도 샹그리아를 팔았다. 반갑고도 신기한 마음에 한 병을 시켰다. 그러나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이 시킨 음식들도 여느 그라나다의 식당과는 달리 푸짐한 인상은 못 받았다.






 어제 숙소에 들어갔을 대 민박집 알바가 비 오는 날 본 세마나 산타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며, 오늘도 할 거라고, 위치를 알려주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 좋은 자리에서 보겠다고 좀 일찍 갔다. - 기다렸는데, 도무지 올 생각을 안 했다. 기다리던 중 한 가족이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뭐라뭐라 말하며 우리에게도 다가왔다. 밤에 비가 많이 올 예정이라 오늘 열릴 행사는 취소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큰 길로 내려가는 곳을 안내해준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이리도 친절할 수가. 허무한 한편 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감사했다. 그냥 자기들만 정보를 알고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특히나 말도 잘 안 통할 거 같은 동양인에게까지 정보를 알려주다니. 시골 인심이 좋은 건지, 스페인 사람들이 친절한 건지, 덕분에 생고생은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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