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3] 모로코 마지막 날

Posted 2013. 6. 17. 13:49

 늦은 밤 무사히 세비야 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도중 일행들이 와이파이가 잡힌다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에 나도 내 태블릿 전원을 켰다. 전원이 들어오고 초기 화면이 나왔는데, 어라, 왜 다시 리부팅 되지. 기계는 무슨 버튼을 눌러도 먹히질 않고 무한 리부팅을 반복했다.

 일단 이 태블릿 기계에는 많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여행 사진뿐만 아니라 기계를 사고 지금까지 찍고 (다른 사람한테) 받아왔던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 혼자 다닐 때, 지도나 도시 정보 등 여행 정보를 활용하기 위한 여러 앱을 이 기계에 설치해 놨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가 되기 전에 수리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리고 3월 23일자 일기가 날아가 버렸다. 일기는 에버노트로 작성해왔기 때문에 매일 동기화는 해 놨다. 그러나 이날 일기는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공항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동기화 할 수가 없었다. 당일 일기에는 23일에 했던 일도 정리했을 뿐더러 모로코의 인상에 대해 장문의 글을 적었다. 그런데 그 기록이... 사라졌다. 길게 쓴 만큼 너무 허무하여 며칠 동안 다시 쓸 생각도 못 했고, 결국 이 날의 일기는 비어있는 체로 오늘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은 이게 제일 큰 문제다. 두 달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일기를 써본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짐을 쌌다. 세비야에서 건너왔을 때처럼 한 캐리어 안에 5명의 짐을 모아 넣는 게 일이었다. 올 때랑 별 차이 없음에도 가방 정리하는 일은 항상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먼저 시장에 있는 오렌지 주스 가게를 들렀다. 마라케시에 가면 오렌지 주스를 꼭 마셔야 한다. 일단 싸다. 한 잔에 4디람(DH)으로 0.4유로로 생각하면 되는데, 한국 돈으로 약 600원이다. 자몽이나 사과 등 다른 주스는 10디람 정도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유독 오렌지 주스는 쌌다. 그리고 맛있다. 설탕이나 시럽이라도 타나 생각했는데, 뒤에서 슬쩍 지켜본 결과 바로 오렌지를 갈아서 주는 게 끝. 그럼에도 달고 맛있다. ‘마라케시에 가면 오렌지 주스를 꼭 마셔야 한다.’ 이 말은 진리다.


<오렌지 주스 노점>


 주스를 마신 후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으로 향했다. 마조렐 정원은 프랑스 화가 자끄 마조렐(Jacques Majorelle)이 설계했다. 이 정원은 20세기 가장 신비로운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정원에는 5대륙을 나타내는 많은 식물이 있고 당시의 가장 중요한 식물 수집가 중 한 명이었던 자끄 마조렐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후에 이 정원은 입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삐에르 베르제(Pierre Bergé)의 소유가 되었다.





<정원 내부. 사진첩을 보니 파란색 건물로 유명한 베르베레(Berbére) 박물관 사진이 없다. 몇 개 있긴 한데 나무에 가려 제대로 안 나왔다.;;>


<입 생 로랑 기념비>


 마조렐 정원에서 나가려 하는데 비가 엄청 왔다. 좀 머질 때까지 기다려봤으나 쉽게 그치지 않았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근처 대형 슈퍼로 갔다. 간식거리도 샀고, 일행들 몇몇은 커피나 티 등 기념품을 사기도 했다.

 슈퍼에서 나온 다음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없고, 숙소까지는 좀 떨어진 거리였기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비록 낡은 모델이었지만 벤츠였다.ㅋㅋ 나와 동생이 한 택시, 다른 일행들이 다른 택시를 탔었다. 나와 동생은 타면서 10DH밖에 없다고 하면서 제마 엘 프나 광장 근처로 가달라고 했다. 기사는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이 출발했고, 광장 근처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그러나 다른 택시를 탄 일행은 먼저 협상을 안 하고 타서 20DH를 냈고, 게다가 먼저 출발했음에도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혹시 마라케시에서 택시 탈 일이 있다면, 먼저 잘 협상하고 타시도록~

 비가 많이 와서 딱히 갈 곳도 없기에 숙소 로비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쉬었다. 숙소의 친절한 직원이랑 같이 놀았는데, 그 직원은 유투브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여러 패러디 버전, 다른 여러 노래들을 틀어주었다. 퇴근해야 된다며 먼저 일어났는데,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그러나 어둡게 나와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_-

 전에 갔던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낮에 갔던 오렌지 주스 집에서 마지막 오렌지 주스를 사마셨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아쉬웠다. 공항으로 가는 차를 타기 전 밤의 제마 엘 프나 광장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기로 찍지 않고 태블릿 카메라로 찍어서... 그 사진은 없어졌다. 너무 아쉬운 사진이다.


<모로코 최후의 만찬>


 공항까지 라씨드가 함께 해줬다. 친구 덕에 맺은,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인연이었다. 라씨드와 헤어지고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무사히 – 태블릿이 고장 났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무사한 건 아니지만;; - 세비야에 도착했다.


 모로코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그 매력을 알기에 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처음 도착하면 호객꾼들 때문에 정신이 없고,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차도는 혼잡이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차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한데 뒤엉켜 있는 곳이 마라케시의 도로다. 그래서 도로를 건너기 전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있다 보면 익숙해진다. 호객꾼은 무시하고 가면 된다.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위해를 가하진 않는다. 도로를 건너는 것도 몇 번 건너다보면 건널 타이밍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어도 사고 난 걸 보진 못 했다. 아주 위험한 건 아니한 소리다.

 모로코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더 깊은 친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로코는 아름답다. 대지의 황홀한 자연경관에서 눈을 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바로 모로코로 넘어가기가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보통 스페인에서 많이 넘어가는데,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일정을 좀 더 여유롭게 잡아 모로코에 놀러 가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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