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패스도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포츠담을 가야하니, 오늘 베를린 못 가본 곳은 최대한 다 가볼 계획을 세웠다. 함부르크 역, 신 국립 미술관, 독일 역사박물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칼 마르크스 거리는 꼭 가봐야 되고, 유대인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테러 박물관은 다시 한 번 들러서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정한 경로는 함부르크 역 - 독일 역사박물관 - 홀로코스트 기념관 - 신 국립 미술관 - 테러 박물관 - 체크포인트 찰리 - 유대인 박물관 -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 칼 마르크스 거리 - 였다.

 함부르크 역(Hamburg Bahnhof)은 예전 역으로 쓰던 건물은 현대 미술 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현대미술... 공짜 아니었음 아마 안 갔을 거다. 건물 모양이 궁금해서 가보긴 했는데, 역 건물이라고 특이한 건 없었다. 앤디 워홀 작품 몇 개가 있었고,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고로 재빨리 보고 나왔다. -_-


<함부르크 역>


<앤디 워홀 작품들>




<베를린은 공사 중>


<신위병소(Neue Wache). 전쟁과 전체주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다.>


 독일 역사박물관(Deutsches Historisches Museum)은 구 건물에 본 전시관이 있고, 유리 피라미드 같은 게 있는 신 건물에 특별관이 있는 구조였다. 티켓을 몸에 붙이는 동그란 스티커로 하는 게 특색이었다. 설명을 최대한 읽어보려 했으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유럽의 역사, 특히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역사는 다 짬뽕되어 있어서 국가 개념이 희박한 거 같다. 근대에 들어서야 독일이라는 나라가 정립되었으니... 한국은 한반도 주변부로 역사를 다루기에 중국의 역사를 그리 많이 알지 않아도, 어느 정도 범위 이내만 다루어 국사라고 한다. 반면 얘네들은 국사 개념이 없을 거 같다. 서양사를 배우고, 근현대사로서 국사를 배우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아무튼, 로마, 프랑크 왕국, 바이마르 왕국 등 역사책에서 봤던 왕조 이름이 나오며 (현) 독일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대별로 전시 돼 있었다. 그리고 나치 시대.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의 일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가감 없이 역사를 다루어 전시하였다. 서양사를 좀 더 알고 봤으면 더 재밌을 거 같았다. 다시 한 번 서양사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레미제라블 영화 본 후에도 레미제라블 완역본 읽으리라 다짐했으나 결국 지금까지 안 읽은 걸로 보아, 서양사도 과연 공부할까 싶긴 하다.;;


<독일 역사박물관 신 건물>


<신 건물 내부>


 프리드리히거리 역으로 돌아가는 도중 처음 보는 맥주를 파는 식당이 있어 들어갔다. 독일 음식을 먹어볼까 하다가, 영어 메뉴였음에도 뭔지 잘 모르겠고, 좀 비싸서 그냥 특선으로 내놓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독일에서 독일 음식을 생각보다 많이 못 먹고 있다. 내일은 먹어봐야 할 텐데...


<처음 봤는데 맛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역으로 이동하여 홀로코스트 기념관(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으로 갔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았다. 첫 전시관에는 연도별로 일어났던 일을 기술해 놓았다. 그 다음 관은 어두운 방 안에 바닥에 불이 들어온 글귀 판이 있었다. 유대인의 일기 등의 글귀가 적힌 판이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하나 글을 읽어나갔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3관은 유대인 가족에 관한 내용이 전시돼 있었다. 이렇게 나치 시대의 만행을 유대인의 기록을 통해 고발하고 있었다. 본받을만한 독일의 역사의식이다.

 그러나 전 일기에서도 말했지만 무서운 건 사실 독일사람. 1 전시관 들어가자마자 프리모 레비의 문구가 있었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그때의 광기는 어떻게 사그라져 갔을까. 미처 있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반성은 했을까. 지금 독일인 중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독일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마찬가지다. 인종 차별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히틀러가 다시 나타났을 때 지지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을 거 같다.








 신 국립 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으로 이동했다. 현대 미술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역시 박물관 패스로 무료입장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피카소와 엔디 워홀 등 좀 들어본 사람 작품이 있다기에 갈 용기가 생겼다. 1층짜리 넓은 건물이었는데, 1층엔 조각이 있고, 지하 1층에 본 전시관이 있었다. 함부르크 역이나 여느 현대미술관만큼의 비율은 아니었지만,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완전 이해까진 아니어도 보고 감상할 정도의 그림도 꽤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미녀와 동선이 비슷해서 만족했던 건지도...-_- 전시관 내부에는 백남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백남준 꺼니 깐 사진은 찍긴 했다만, 역시 이해하기 힘든 것.

 현대 미술 하는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설명도 같이 써줬음 좋겠다. 보고 느낀 그대로가 정답이다 이런 소리 하지 말고, 적어도 자기가 만들 때 뭔 생각은 하면서 만들었을 텐데, 그 생각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 생각을 듣고 작품을 보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가 줄어들 순 있겠지만, 뭔지 하나도 모르는 것보다야 그 정도나마 이해하는 게 훨씬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니 센터(Sony Center) 앞에 주차된 BMW, 메르세데스, 아우디. 뭐냐, 이 위압감은...>


<신 국립 미술관>








<조명이 계속 바뀌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백남준 작품>


<이것 역시 백남준 작품>



<1층의 조각 전시관>


<괴테>


 테러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으로 가서 며칠 전 메모리 카드 없이 찍었던 사진을 다시 찍었다.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후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로 가서 전에 찍었던 구도 그대로 다시 찍었다. 유대인 박물관으로 이동하려는데 1유로짜리 오렌지 주스가 눈에 띄었다. 직접 오렌지를 갈아서 주스를 주는 건데, 200cc이었음에도 1유로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싼 거 같진 않지만, 얘넨 오렌지 가격이 안 비싼지, 두 개 정도 갈아준 거 같은데 1유로면 꽤 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설탕 같은 첨가물이 없이 오렌지를 갈기만 한 건데, 시지 않고 달달한 게 신기하다.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으로 가서 빠르게 훑으며 사진을 찍었다. 다시 봐도 잘 만든 전시관이다. 다음은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향했다. 키스 그림과 벽을 뚫고 나오는 차 그림 앞에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에는 옆에서 좀 틀어진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정면으로 잘 찍을 수 있었다.

<이 날 다시 찍은 사진은 27일 여행기에 있다.>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 역으로 가 칼 마르크스 거리(Karl-Marx-Allee)를 가보기로 했다. 길을 잘 못 들어 찾는 데 좀 헤맸다. 책에는 엄숙한 거리라고 쓰여 있었는데, 넓고, 차가 많이 다니는, 다른 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거리였다. 마르크스 동상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별 특징 없는 거리여서 아쉬웠다.


<칼 마르크스 거리 도착>


<그러나 그냥 넓은 도로>


<저런 건물에서 엄숙한 분위기를 찾으면 되려나.ㅋ>


<페른제투름(TV타워, Fernsehturm)>


 역 근처에서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맥주를 팔기에 마셔봤다. 베를린에서만 판다기에 베를린 도착 전부터 기대했는데, 역시 기대를 많이 하면 안 된다. 그냥 맥주에 체리 맛 색소를 넣은 느낌? 과일맛 맥주를 마시는 느낌인데, 그렇게 달달하지도 않고, 기대 이하였다. 다른 가게에서 많이 안 보이는 이유를 알 거 같기도 하고...-_-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배가 별로 안 고파 그냥 숙소로 향했다. 역 내부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가서 포츠담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다. 배차 간격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영어가 안 됐다. 상담원은 잘 못 알아듣고, 옆에 있는 상담원은 웃기 시작했다. '너 답답하겠다, 진상 같은 고객 걸렸구나!' 이런 느낌이었는데, 자격지심이려나... 포츠담 역까지는 s-지하철이 가지만, 상수시 공원까지는 re1 열차가 간다. 그래서 두 개 요금이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 re1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아까 s 요금 알려주지 않았냐는 듯한 말투로 same이란다. 멍청해서 미안하다, 아오. 그냥 보통 사람과 얘기할 땐 여자가 편하지만, 이렇게 업무적으로 얘기할 땐 남자가 낫다. 적어도 저 여자처럼 어이없다는 표정은 안 지으니... 자격지심인가...

 숙소로 돌아와 이지젯 비행기 티켓을 프린트한 후 올라왔다. 배도 별로 안 고프고 기분도 별로라 저녁을 먹지 말까 싶다가, 밤에 배고플까봐 억지로라도 뭘 먹기로 했다. 아까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가는 길에 사람 좀 있는 케밥 집을 본 게 있어 거길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야 되는 게 짜증나, 어제 갔던 커리 36을 갈까도 싶었는데, 그래도 케밥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한국에서 보던 케밥 사진이 있었다. 그걸 주문. 갈릭 소스를 선택했는데, 칠리소스를 할 걸 그랬다. 고기도 좀 질기고 퍽퍽한데 소스까지 하얀 크림에 갈릭이니, 목이 좀 매였다. (물론 세트 메뉴라 콜라를 같이 마시긴 했으나, 양 조절 하느라 벌컥벌컥 마시진 못 했다.) 어쨌건 또 오늘도 저렴하게 저녁을 때웠다. 내일은 유로도 많이 남았겠다, 독일식으로 제대로 먹어야겠다.

Bookmark and Share   AddThis Feed Button     rss?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