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날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빼놓고 사진을 찍었다. 고로 이 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여기 있는 사진은 30일에 다시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것들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발도 여전히 아프고, 돌아다니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여전히 드는 아침이었다. 그냥 체크아웃 시간까지 게기다가 다음 숙소로 이동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숙소 체크인 시각이 오후 3시이니 가운데 시간이 비기도 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8시 쯤 일단 일어났다.

 숙소에서 아침을 때울까 하다가 6유로가 좀 비싼 거 같고, 책에서 추천해준 햄버거 집을 가보고 싶어 짐을 맡긴 후 발걸음을 옮겼다. 발은 생각보다 들 아팠다. 발목을 접거나 좀 틀 때 아프긴 하지만 그냥 걷기엔 최악은 아니었다. 예전엔 오른 발등이 그랬는데, 이젠 왼쪽 발등. 그때도 발에 금갔나 싶었는데 금 간 건 아니었고, 근육통이라고 했는지 잘 병명도 기억이 안 나고, 어떻게 치유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힘든 발걸음으로 겨우겨우 햄버거 집을 찾아갔는데 준비 중이고 개점은 안 했다. 10시 40분이었는데 11시부터 여나보다. 근처 아무데나 갈까 하다가 또 검증되지 않은 음식점 들어갈 용기가 안 나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내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향했다. 갤러리라고 해서 따로 실내 미술관이 있는 건 아니고, 베를린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전체를 갤러리라고 하는 거였다. 책에서 알려준 그림 두 개를 찾으며, 그림을 감상하며 다시 숙소 근처 역 쪽으로 걸어갔다. 확실히 그 그림 두 개는 유명해서인지 사람들이 앞에서 사진 찍느라 모여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




<소련 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주네프가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에게 키스하는 모습>


<검게 그을린 건 폭탄 맞은 흔적이려나?>



<트라반트(Trabant)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어오는 그림>






 유대인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 지하철에서 내려 케밥 집으로 향했다. 베를린에서 되네르 케밥을 처음 한 곳이라고 책에 소개가 돼 있어 그걸 시켰다. 케밥 하면 흰 밀가루 반죽 같은 거에 고기랑 야채 등을 넣고 만 걸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값이 비쌌다. 사실 케밥 두 개 정도 시키려다 가격 보고 하나만 시켰다. 그리고 음식도, 생각한 케밥이 아니었다. 밥 위에 얹어진 고기 따로, 야채 따로, 크림소스 따로였다. 빵을 따로 주긴 했는데, 하얗고 얇은, 케밥 용 빵이 아니라, 그냥 좀 두툼한 빵 두 개였다. 어떻게 먹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나 좀 살펴봤는데, 그냥 나온 그대로 먹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케밥이 케밥이 아닌가.;; 이따 숙소에서 찾아봐야겠다. -> 검색 결과 이렇게 나오는 게 맞는 듯. 싸 먹기도 하고 그냥 이렇게 먹기도 하나보다.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 도착. 일반적인 서양 건물과 철제로 된 거 같은 구불구불한 건물이 함께 있는 구조였다. 빈 공간, 막다른 복도, 사선 창문, 기울어진 바닥이 균형을 잃게 하는 구조인데, 삶의 불확실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하는 이런 느낌이 잘 살아있는 곳이었고, 1, 2층은 유대인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박물관이었다. 유대인의 역사와 생활 모습, 독일에 정착하여 독일인과 같이 사는 내용, 그리고 나치 시대까지. 건물 구조도 그렇고 내용 구성도 그렇고, 진짜 잘 만든 박물관이었다. 특정 주제에 관한 박물관을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유대인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내내 생각난 두 가지는 일본, 전두환. 일본에 일제 만행 박물관 만들고, 대구였나, 전두환 고향에 전두환 동상 따위를 만들 게 아니라 민주화 전시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일제 만행과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 과연 일본과 경상도는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독일의 이런 모습에 유대인이 얼마나 화해의 마음을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겐 해야 하지 않을까. 만날 헛소리나 하고,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떳떳이 말하고 부끄러움도 없는 그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홀로코스트 타워>











<흠.. 저 옷은... 아니겠지?;;>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원형 건물>


 다음으로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로 이동했다. 유대인 박물관을 보고 와서인지 체크포인트 찰리는 박물관(Haus am Checkpoint Charlie) 구조가 좀 난잡한 거 같았다. 어떤 루트로 어떻게 가야할지 잘 감도 안 왔다. 그리고 사진과 글 위주인데 벽면 가득 내용에 채워져 있고, 통로도 좁다보니 글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기란 어려웠다. 동독 시민들이 서독으로 힘겹게 탈출했구나 하는 걸 사진으로나마 느낀 게 소득이라면 소득.









 이후 근처에 있는 테러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으로 갔다. 예전 나치 시절 ss본부 터에 만들었는데, 넓은 공간에 1층짜리 사각 건물이 놓여있고, 그 옆으로 지하 구조로 나치 시절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본 전시관은 1933년부터 1945까지 나치가 어떻게 만행을 저질렀는지 사진과 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일 애들은 확실히 이런 건 잘 만드는 거 같다. 일본에 일제 만행 전시관 같은 게 있기나 한가. 조선인들도 홀로코스트까진 아니어도 유대인만큼 당하면 당했지 덜 당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사람 중 이런 일제 만행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유대인을 완전 없애려는 이런 생각은 전두환이 전라도를 다 쓸어버리려는 생각과 다를 게 무엇일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걸 너무 쉽게 잊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이런 게 너무 무서운 현실이다.

 그런데 독일 칭찬을 하긴 했지만, 사실 무서운 게 어찌 보면 독일 사람이다. 그 당시 나치에 동조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그 많던 광기가 히틀러가 죽고 다 사라졌나. 그들의 광기는 어떻게 나온 걸까. 사실 히틀러야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냐의 문제지. 지금도 신나치즘이니 뭐니 해서 미친놈들이 있지만, 대다수가 그들을 무시한다. 그런데 저런 광기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이게 무서운 거지...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았다. 자판기에 물이 있는데, 1 유로 밖에 안 했다. 다른 슈퍼 등에는 최소 1.5는 넘던데, 반가운 마음에 뽑아 마셨다. 좀 들고 다니며 마시려다 목도 마르고, 들고 다니기 귀찮아 숙소에서 다 마셔버렸다. 탄산수가 아닌, 이런 제대로 된 물을 마신 게 얼마만인가.ㅎㅎㅎ

 그리고 5일 밤을 묵을 숙소로 이동.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는지 마실거나 마시며 기다리라고 한다. 설마 자리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일단 마시라니 기꺼이 맥주를 마셨다. 다시 직원이 와서, 별 문제 아니라고 하며 방 안내를 해줬다.

 방 카드를 받고 올라왔는데, 외국인 커플이 한 쪽 침대를 쓰고 있었고, 다른 두 자리가 남았으며, 특이하게 엑스트라 베드가 하나 있었다. 다른 두 자리 중 1층을 차지하려 하자 외국인이 그거 내꺼 아니라고, 이따 다른 두 명 올 건데 게네 자리라고 한다.


<원래 2층 침대 두 개짜리 방이지만, 오른쪽에 보이는 것처럼 엑스트라 베드 깔아줌>


 이게 뭔 말인가 싶어 알았다고 한 후 로비로 다시 갔다. 난 4인용 방을 예약했는데, 방엔 침대 4칸이랑 엑스트라 베드가 있는데 이게 뭔 일이냐 하니, 미안하다며 문제였던 게 그거라고 한다. 이틀 밤 지나면 다른 정상적인 방으로 옮겨주겠다고 하며, 아침을 무료로 먹게 쿠폰을 준다고 했다. 하는 수 없으니 알았다고는 했는데, 그럼 아까 진작 말하지, 왜 이제야 말하나. 내가 그냥 수긍하고 안 내려 와봤으면 그냥 당할 뻔 했다. 엑스트라 베드 쪽에는 콘센트도 없고, 짐 보관함도 없어 불편하긴 한데, 5.9유로짜리 아침을 5일 연속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쁜 장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방도 이상하게 배정받고 하니 또 기분이 다운되었다. 7시쯤 됐음에도 어디 나가기도 그렇고,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아 그냥 이렇게 하루 밀린 일기와 오늘 일기를 쓰고 있다.

 저녁은 먹어야겠고, 9시쯤 숙소에서 나왔다. 그런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괜히 론니 플래닛 책은 껴안고 나와서 고생이다. 게다가 책에 나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안 보인다. 날이 밝으면 모르겠는데, 비까지 오고 밤이니 제대로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뭐, 계속 뒤지면 어떻게든 됐을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

 다시 중앙역에 도착하니 10시. 한 시간을 허비했다. 얘네는 밤에 별로 활동을 안 하는지, 9시 넘어가니 지하철 배차간격이 확 늘었다.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역에 버거킹과 피자헛 간판이 보여 한 번 가봤다.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버거킹이 세트메뉴도 아닌 것이 5유로가 넘어갔다. 피자헛을 보니 두 조각과 음료수 하나에 5유로 좀 넘었고. 고로 피자 주문. 우연히도 이틀 연속 저녁을 피자를 먹는다. 그런데... 피자헛이 이렇게 맛없었나. 유럽 와서, 아니 여태껏 먹었던 피자 중 이렇게 맛없는 건 처음이다. 원래 피자헛이 이렇게 맛이 없는 건지, 역이라서 맛을 보장 못 하는 건지... 역시 피자는 이탈리아다. 빵만 두껍고 토핑과 소스가 제대로 어울리지도 않고... 입맛만 배렸다. 오늘 하루 진짜 뭔가 안 된다.

 숙소에 들어와 보니 모두 불 끄고 자고 있다. 컴퓨터를 캐리어에서 꺼내고 옷 다시 정리하고 하면 부스닥 소리 날까봐 - 왜 이리도 눈치를 보는지 - 그냥 잤다. 진짜... 오늘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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