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김용철 (사회평론,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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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아니라 이건희

책의 제목은 <삼성을 생각한다>이지만 저자 김용철이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이건의 일가와 이학수, 김인주로 대표되는 회장 비서실[각주:1]이다. 이 점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본다.

물론 삼성에서 이건희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삼성 = 이건희’라는 등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러한 인식은 오해의 소지를 가져올 수 있다.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데 삼성이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와 같은 반응이 이런 오해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정확히 구분하자. 이 책은 삼성을 욕하는 게 아니라 이건희와 그 가신을 비판하는 것이다. 비자금을 비롯한 비정상적인 구조 때문에 오히려 삼성이 안 풀린다고 볼 수 있다.[각주:2]

비자금, 그리고 뇌물

저자가 지적하는 이건희 일가와 비서실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자금’일 것이다. 이들은 온갖 편법과 위법을 통해 비자금을 모은다. 그리고 이 비자금은 이건희 일가의 개인 용도로 쓰이거나 사회 각 분야-이 책에서는 국세청, 검사, 판사, 정치인, 언론 등을 지적하고 있다-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뇌물로 이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죄책감을 거의(어쩌면 아예)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서실 사람들은 마치 중세 영주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사나 쇼군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사무라이같이 (다시 말하지만, 삼성이 아니라) 이건희 일가에 맹목적이다. 그리고 이건희 일가는 ‘내 돈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 데 무슨 문제냐’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법 안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까 하며 편법, 혹은 꼼수를 부리는 데 반해 삼성은 법을 바꾸려 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게임의 룰을 무시하고 온갖 반칙을 하면서 이기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성 왕국이라도 건설하려는 듯하다. 아니, 이미 삼성 왕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곳은 삼성 왕국도 아니고, 삼성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삼성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져 회사 자금이 많이 줄었다고 하자. 그러면 비자금을 줄일까, 사업을 정리하고 사람을 쳐낼까. 만약 비자금이 줄어서 뇌물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검찰, 국세청, 언론은 그래도 삼성 편을 들까, 돌아설까.

삼성과 관련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삼성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봤을까. 읽어봤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또한 이건희 일가의 이런 추악한 모습을 알게 됐을 때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그 많은 삼성의 주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노동의 대가가, 자신이 투자한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삼성에 다니는 직원은 동종 업계와 비교해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삼성 주식의 주가는 높다(고 알고 있다).

지금 삼성의 모습이 바뀐다고 할 경우 이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함’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삼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 후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지는 전적으로 이들의 의지라고 본다.

권력자들

저자가 이건희와 주변사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가장 많이 비판한 대상은 법조계 사람들이다. 언론도 자주 비판 대상에 올랐고, 국세청 관계자들도 저자가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였지만 더욱 큰 문제점을 갖고 있을 거라 지적했다. 누구든 뇌물을 받으면 잘 못이지만, 특히 사회 윗부분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패하면 더 큰 문제라는 것은 자명하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이건희 일가에 분노하고, 검찰, 언론에 또 한 번 분노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우리 안에 삼성(혹은 이건희)는 없는가. 인맥이라는 허울 안에 욕망을 감추고 있진 않나. 인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뇌물을 통해 권력을 가진 자에게 접근하고, 혹은 권력자(또는 권력자를 아는 사람)랑 어떻게든 친해진 후, ‘나 이런 사람 아니 든든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모습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인맥이라는 말로 통하지만, 이는 인맥이 아니다. 부당하고, 불공정하며 사회 전체의 규칙을 깨며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병폐일 뿐이다.
  1. 회장 비서실을 줄여서 ‘실’이라 불렸는데,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실’이라는 이름이 계속 쓰였다. (p.137) [본문으로]
  2. 프레시안 기사 ""삼성은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할까?""나 이원재 님의 글, "삼성, 관리냐 창조냐"를 읽어보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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