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1장 4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의 금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성폭력범죄와 관련하여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된다.[각주:1]
이은의씨란 분이 계시다. 블로그에서의 닉네임은 쨔스. 나는 이 분을 알지 못했으나 민노씨님의 블로그를 통해 이 분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삼성전기에서 일하시던 이은의 씨, 쨔스님은 삼성전기에서 일하던 중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관련 기사)
...부서장은 사무실을 오가다가, 책상 뒤에서 그의 뒷목이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곤 했다. 또 등에 손을 대 브래지어 끈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이 씨는 거래처인 삼성전자 헝가리 사업장을 방문해 업무 협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가해자가 얇은 여름 치마를 입고 있던
이 씨의 엉덩이를 툭 쳤다. 이어, 가해자의 입이 귀에 다가왔다. 그리고 한마디. "상무님, 잘 모셔."
...호텔에 돌아온 뒤, 가해자는 이 씨를 밖에 불러냈다. 그리고 마구 야단을 쳤다. "여사원으로서 해 줘야 하는 의전이 부족한 것
같다. 복직 후에 다른 부서장들은 (이 씨를) 안 받겠다고 했는데 나는 받아줬다. 아침에 모닝콜도 좀 해주고 술자리 분위기도 좀
잘 맞추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누가 봐도 확실한 성희롱. 그런데 회사 측의 반응은?
이 씨를 만난 인사팀 담당자는 "조사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라고 했다. 연락은 금방 오지 않았다. 얼마 뒤, 가해자가
명예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가해자와 영영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해자는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이 씨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었다.
가해자가 퇴직한 직후, 인사팀 담당자가 이
씨를 불렀다. 그는 이 씨에게 "가해자가 퇴사했기 때문에, 회사가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그래서 이 씨는 "정식으로 문제 삼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인사팀 담당자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상급 단위인 본부 인사 그룹 부서장이 이 씨를 불렀다. 그는 가해자가 퇴사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가 이미 퇴사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니 원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 하라.
그것을 해결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 너희 참 법망을 잘도 피해갔구나.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같은 해 10월 말, 인사 고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사 담당자가 'C-'를 부여했다. 담당자는 "부서장의 성희롱을 고지하고 배치요구를 하고 있는 것도 조직 부적응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에게 수원 사업장이 아닌 곳으로 발령 나게 해 주겠다던 인사 담당자가 2006년 1월 중순께 이 씨에게 연락했다. 자신은
부산으로 발령 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 씨가 수원 사업장 내 교육부서로 가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나서, 이 씨는 항의 메일을 보냈다. 하루 뒤, 담당자가 이 씨를 불렀다. 그는 서울 사무소 IR(외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 설명 활동) 부서에 이 씨가 배치되도록 결정됐다고 이야기 했다.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와 다른
건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요구한 지, 반년이 지나서 나온 결정이었다.
2006년 2월, 서울 사무소로
출근했다. 마침 휴가 중이었던 부서장은 복귀한 첫날, 부서원 전체에게 메일을 보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은 여직원을 부서장이
직권으로 해고하는 게 정당하다는 판결을 소개하는 기사가 담긴 메일이었다.
이어 부서장은 외부 투자자 미팅에서
이 씨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IR 업무의 핵심에서 빠지라는 뜻이다. 따돌림의 시작이었다. 업무에서 배재되니, 다른 부서원들과의
인간관계도 소원해졌다. 부서원들 역시 이 씨를 따돌렸다. 하루 종일, 아무도 이 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업무에 대해 이 씨가
물어도, 다들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회식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은 이 씨를 빠뜨리고 술잔을
권하기 일쑤였다.
...결국 회사 측은 2006년 4월 이 씨를 사회봉사단으로 발령 냈다. 이 씨는 현재 수원 사업장에 있는 사회봉사단으로 출퇴근 한다.
이런 게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그런데 어쨌건 삼성에서 터졌다. 역시 삼성... 짜증난다. 아니다, 이 글에선 논점을 흐릴 수 있으니 삼성을 꼭 끌어들일 필욘 없겠지.
한국에서 성희롱 당한 여성은 피해자인가. 피해자라면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가해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 아니 적어도 이은의 씨가 일했던 삼성전기에서의 직원들에겐 이은의씨가 피해자가 아닌가보다. 가해자가 했던 말, '여사원으로서 해 줘야 하는 의전이 부족한 것
같다'가 단지 가해자의 잘못된 의식에서 나온 말이라면 적어도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겠지.
성희롱 당한걸 알면서도, 그 가해자를 욕하면서도 한 편으로 '뭘 저리 따질 것까지야, 뭔 여자가 저리 드세, 대충대충 넘어가지 왜 걸고 넘어져서 힘들게 사나' 등의, 이런 유의 주변 사람들의 의식이 그녀를 따돌림 시키고, 그녀를 힘들게 한 건 아닌지. 가해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 진 모르겠다. 그런데 피해자는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힘들게 살고 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피해자인가?
한국에선 이런 문제가 나오면 꼭 남녀 문제로 몰아가지며 뜬금없는 군대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여성부를 공격하는 등 마초가 득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남녀의 문제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는 인권의 문제이다. 한 개인이 모독을 당했음에도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약자로 남아있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존중해줬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 런지, 여전히 우리는 인권 의식이 부족한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