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Posted 2015. 3. 4. 11:56



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 | 2005-12-1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인류문명의 불균형은 총, 균, 쇠 때문이다!퓰리처상을 수상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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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잘못된 기억일 수 있는데- 번역이 별로라는 평을 어디선가 본 거 같고, 무엇보다 책의 광고문구, ‘서울대 대출 도서 1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괜한 반감이었다.

 그러다가 14년 11월, 도서정가제를 시작하기 전에 각 온라인 서점들이 폭탄 세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이 책도 50% 할인을 하였다. 그래서 구입하였고, 산지 얼마 후에야 책을 읽게 되었다. 하루에 한 장(chapter)씩 읽느라 읽는 기간은 길었지만, 엄청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류는 보통 수렵 → 농경 → 인구 증가 → 국가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인구가 많고, 주변과 교류도 많고, 주변국과의 경쟁이 있을수록 기술이 발전한다. 그런데 수렵에서 농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기후나 환경 조건이 중요하다. 작물 가능한 식물이 있어야 되고, 가축화 가능한 동물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유라시아 지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 등지에서 식량 생산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대륙보다 교역에 유리했던 유라시아에서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총, 균, 쇠라는 제목치고는 각각 무기와 금속을 비유하는 총이나 쇠에 대한 얘기는 비중이 낮다. '농경 사회와 인구 증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한다. 그리고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에 대한 얘기가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 인도소 얘기밖에, 그것도 매우 잠깐 나왔던 거 외에는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기후나 환경이 좋았고 교역이 많았던 곳이라는 조건이 이 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거의 만능열쇠처럼 적용된다. 이 분야에 지식이 없으니 그렇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살짝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인종에 따른 능력차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한다. 긴 시간을 통해 보면 결국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상태를 연구해 살았을 거고, 그것은 어느 인종을 대려다놔도 똑같을 것이란 거다. 이 세계의 모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아래부터는 읽으면서 발췌, 정리한 내용이다. 가끔 내 생각도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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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현대 세계와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뉴기니 친구인 얄리는 저자와 대화하다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책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제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제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식량 생산과 수렵은 이분법적이지 않다. 식량 생산을 못 해서 수렵을 하는 게 아니라, 수렵이 더 낫기 때문에 수렵을 하는 것일 수 있다. 더 낫다는 것은, 생산성일 수도 있고, 기호일 수도 있다. 고기가 많이 잡히고 열매가 많이 열려있는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굳이 생산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야생 먹거리 감소, 보상이 많으면서 작물화 가능한 식물 증가, 식량 생산 기술의 발전, 인구밀도 증가. 이 네 가지 요인으로 점차 수렵보다 식량 생산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중 인구밀도와 식량 생산은 닭과 달걀의 관계이다. 인구밀도 증가 속도가 빨라서 초반에는 식량 생산 생산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제8장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기후와 식물의 영향은 엄청나다. 이른 시기에 보리와 밀이 자라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축복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해살이 식물이 과실에 에너지를 많이 쏟고, 그래서 큰 기술 없이 쉽게 재배되고, 덕분에 사람들이 생산성 높은 곡식을 구했다는 건 기후와 식물종의 절묘한 조합의 결과물이다.


제9장 선택된 가속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

 148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대형 야생 초식성 육서 포유류(가축화 후보 종) 중 겨우 14종만이 가축화되었다. 실패 원인은 최소 6가지: 식성, 성장 속도, 감금 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골치 아픈 성격, 겁먹는 버릇, 사회적 구조. 실패 원인을 하나라도 극복하지 못하면 가축화에서 탈락되었다. 소나 돼지 등은 가축화에 성공하고 하마, 코끼리 등은 실패한 이유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마태복음 22장 14절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드디어 균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세균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의 파괴력/살상력은 막강하다. 질병을 버텨내고 면역체계가 만들어져 유전된 인간이 살아남게 된다. 콜레라나 페스트 등 과거 무시무시했던 질병은 동물, 더 구체적으로는 가축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된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왜 유럽 점령자에게 쉽게 당했나. 무기의 차이도 있지만 직접 살상된 수보다 질병으로 죽은 수가 훨씬 더 많다. 유럽인들이 오면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퍼뜨린 전염병에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본토에 없던 세균이고, 따라서 면역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거꾸로 원주민에게서 점령자로 전염된 질병은 거의 없나. 이는 농경과 수렵 문화를 떠올리면 된다. 농경문화가 발달된 유라시아에서는 자연스레 가축을 많이 길렀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등은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적었고, 전염병과 그 면역체계를 갖출 가능성이 적다.

 아프리카 일부나 동남아 등 열대우림 지역의 전염병은 유럽인들을 곤란하게 했고,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보다 정복 시기가 늦어졌다.


제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발명과 기술 발전 이야기. 내용 도중 인쇄술이 중국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전된 이야기가 나온다. 종이, 활자, 야금술, 압착기, 잉크, 문자 기술이 다 갖추어져있어서 인쇄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수많은 한자보다 알파벳이 수가 적기 때문에 유리했을 거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단지 글자가 복잡해서 인쇄술 발전이 늦었다면, 한자가 금속활자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활자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뛰어 넘는 폭발적인 수요가 생겼기 때문인가.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나 직지심체요절을 제작할 기술이 있었음에도 대중화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술발전의 격차는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 의해 벌어졌다. 유라시아 대륙은 가장 넓은 대륙이지만 그만큼 주변에 경쟁 민족/국가가 많았고, 인구도 많아 확률적으로 발명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또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처럼 대륙 횡단에 기후 등의 큰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사회 유형을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의 네 범주로 구분하였다.

 도둑 정치는 어떻게 대중의 지지를 받나.
 1) 대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킨다.
 2)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재분배
 3) 무력을 독점하여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을 억제함으로써 대중 행복 도모
 4)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 구성
  4-1)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유대감 형성으로 무관한 개인 간의 살인 억제
  4-2)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전쟁 등에서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동기 부여

 국가 기원
 1) 국가는 자연스러운 것(아리스토텔레스) → 15세기 말까지도 무리, 부족, 추장 사회 존재
 2) 사회계약설(루소) 이렇게 형성된 국가 없음
 3) 대규모 관개시설 건설과 국가 탄생 시기 비슷 무리, 부족, 추장 사회 발전 단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 관개 시설 건설 시기도 국가 탄생 시기와 연관성 낮음
 위의 세 가지 설보다는 국가의 기원은 대규모 인구 발생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식량 생산은 인구 규모 확대하고 복잡한 사회 존재 가능케 한다.
 이런 사회가 중앙집권적 조직 갖는 이유
 1) 무관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 중재
 2) 사회 내 효과적 의사 결정
 3) 물자 교환. 물물교환 방식에서 중앙의 재분배 방식으로
 4) 높은 인구밀도에 따른 공간 문제. 자기 공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든다.



제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제15장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이 장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왜 이 두 곳은 가장 늦게까지 문자 문명 발전은커녕 석기를 이용하는 부족 문명에 머물러있었느냐를 탐구한다.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진 것과 작물화하기 힘든 기후 조건, 소 등의 가축화 할 동물이 없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다.

 이 장에서 특히 놀라운 건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차이다. 사실 이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쪽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뉴질랜드 정도로만 인식됐지, 뉴기니의 존재는 잘 몰랐다. 물론 파푸아뉴기니는 알고 있지만 그게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위에 있는, 게다가 뉴질랜드와 엄청 가까운 섬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해수면이 높아지기 이전 이 두 곳은 같은 대륙붕으로 같은 대륙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까운 이 두 곳이 왜 그리 다른 모습의 무리와 부족이 생활하고 있었을까. 환경의 차이도 있고, 가깝지만 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지만 뉴기니의 중심부와 오스트레일리아까지는 3,200Km정도 떨어져있다. 게다가 이 사이는 바다고, 그 사이사이 여러 섬이 있다. 뉴기니의 문명화된 도구나 식량 등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갈 때 각 섬을 거치면서 그 범위가 축소된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는 건조한 사막이 많다. 북부에서 남부로 문명이 전파되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었다.

 또한 유럽 정복자들이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온 과정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뉴기니는 중심부가 산악 고지대인 반면 해변 등은 식량 생산에 좋은 곳은 아니다. 게다가 유럽인들이 버티기 힘든 말라리아 등의 질병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뉴기니 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인들과 교류하면서 유럽인이 전파할 수 있던 질병에 대한 항체가 어느 정도 있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런 교류가 없었기에 전염병으로 엄청난 인구가 죽어나갔다. 게다가 많은 부족들이 해변에 위치했기에 유럽인들이 강한 무기로 그들을 점령하기 쉬웠다.


제16장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동아시아, 특히 중국이 하나의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물론 만다린 어를 비롯해 그와 가까운 일곱 언어가 있긴 하다. 중국은 과거 왕조 때부터 주변 민족을 야만인으로 보고 그들을 통일해가며 불도저 같은 모습으로 문화 통일까지 이루어냈다. 이는 다른 대륙과 달리 남북과 동서로 뻗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지형과 기후 덕분이었다.


제17장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지금까지 중 제일 어렵게 읽힌 장이었다. 오스트로네시아, 오스트로아시아, 폴리네시아 등의 개념이 잘 정립이 안 돼 있다 보니 헷갈렸다. 지금까지는 이 단어들이 등장해도 대략적인 느낌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 장에서는 동시에 각 단어가 구별되어 사용되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시아에 대한 무지도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제19장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아프리카 이야기다. 아프리카에는 전 세계 인류를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할 때 다섯 인종이 살고 있다.
 1) 흑인
 2) 백인 - 이집트나 베르베르족 등 북아프리카 사람들
 3) 아프리카 피그미족 - 흑인에 비해 체구가 훨씬 작고 피부가 덜 검다. 붉은빛이 많고 몸에 털이 많으며, 이마, 눈, 치아 등이 튀어나온 편이다.
 4) 코이산족 - 체구가 큰 코이족과 체구가 작은 산족. 아프리카 흑인들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데, 피부색은 누르스름하고, 머리카락은 심하게 말렸으며, 여자들은 둔부 지방이 많다.
 5) 아시아 인종 - 동아프리카에서 400Km정도 떨어져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에 흑인과 열대 동남아인이 같이 살고 있으며, 언어는 모두 오스트로네시아 계를 사용한다.

 농경문화를 갖고 금속을 다룰 줄 아는 반투족이 수렵, 채집에 의존하는 코이산족을 쉽게 몰아낼 수 있었다. 코이산족은 여름비에 적합한 반투족의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는 남아공의 희망봉 일대까지 밀려 내려온다. 그런데 그곳은 겨울비가 내리는 지중해성 기후대로, 남아공의 곡창 지대이다.


에필로그 | 과학으로서의 인류사의 미래
 앞쪽은 지금까지 내용의 정리 내용이다.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환경의 차이라는 것이다. 구체제적으로 가축화/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 간 차이,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대륙 간 차이,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 차이 등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과정: 옛날 비옥한 지대가 지금은 사막, 반사막, 스텝으로 변하거나 토양이 심하게 침식되거나 염분이 너무 많아 농업에 부적합하다. 농업을 하기위해 개간하거나, 건축용 목재 구하기 위해 벌채하거나, 땔감으로 쓰거나 회반죽 만들기 위해 숲을 태우며 과거 숲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 일대는 강우량이 적어서 생산성이 낮은 편이다. 식물이 다시 자라는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염소 방목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반면 유럽은 강우량이 더 많아 식물이 더 빨리 재성장할 수 있다.

 중국이 추월당한 이유: 1405 ~ 1433 일곱 차례의 선단이 중국 떠나 항해하였다. 당시 환관과 반대파 권력투쟁에서 선단 파견 동조하건 환관파가 반대파에게 졌고, 반대파는 선단 파견 중단하면서 조선소를 해체, 해양 항해를 금지했다. 그리고 중국은 통일된 반면 유럽은 단 한 번도 통일된 유럽인 적이 없다. 콜럼버스도 여러 왕에게 항해를 부탁하고 거절당하다가 겨우 스페인 왕의 허락을 얻었고, 스페인의 식민지 성공에 자극 받은 주변국들도 식민지 작업에 착수하였다. 하나의 왕조인 중국에서는 한 번 거부된 명령을 뒤집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은 여러 산맥들과 다섯 개의 큰 반도-그리스, 이탈리아, 이베리아,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와 영국과 아일랜드의 섬으로 나뉘면서 독립된 국가들이 번성하였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탄한 해안가이고, 타이완과 하이난 섬도 최근에야 독립 같은 모양새이다. 게다가 내부 대륙도 평탄한 지형이다. 초반에는 이런 지형 이점으로 식량 생산이나 기술 발전이 용이했으나, 하나의 통일된 정치체제의 장기화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런데 반도가 많은 것과 독립 국가의 관계성은 잘 모르겠다.



추가 논문 |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중국 연대기에 중국이 B.C. 108 ~ A.D. 313 한반도 북부를 점령했다고 한다. 고구려가 B.C. 37년에 건국되었는데, 저 기간은 한사군을 말하는 것 같다.

 옛 일본인인 조몬인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조몬토기(12700년 전)를 만들었다. 수렵 생활 치고 높은 인구 밀도를 보였는데, 풍부한 자원 덕이었다. 따뜻한 중국 남부에서 기르던  벼가 훨씬 서늘한 한국을 향해 북상하며 전파되었는데 추위에 적응하여 개량될 때까지 많은 시간 소요되었다. 초반 한반도 농사는 물을 댄 논이 아니라 마른 땅에서 이루어졌기에 생산성이 떨어졌다. 수렵 생활을 하던 조몬인들의 생산량에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B.C. 400년경 한반도 남부로부터 새로운 생활양식 도래하며 야요이 문화가 시작되었다. 철기, 농경문화, 물을 댄 논, 수로, 댐, 제방. 토기, 동제 물품, 직조 기술, 유리구슬, 땅에 묻는 쌀 저장 항아리, 죽은 사람을 곡에 넣는 풍습, 한국식 도구와 집 등 일본의 이전 시대와 상당히 동떨어진 한국적 문화였다.

 현대 일본인의 조상에 대해 세 학설이 있다.
 1) 조몬의 수렵 채집민 자체가 전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
 2) 야요이 시대 어마어마한 수위 한국인  이주
 3) 적은 수의 한국인 이주, 조몬인보다 빠르게 불어남.
 고대 유골에서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유전자를 비교해보면, 야요이인이 현재 일본인과 가장 닮았고, 조몬인은 아이누인과 유사하다. 따라서 저자는 2, 3번설이 유력하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어는 아이누어나 한국어와는 다르다. 홋카이도의 조몬어와 규슈의 조몬어는 다름 언어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홋카이도 등 북부는 아이누어 영향이었고, 규슈 쪽은 오스트로네시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어와 옛 일본어에 비슷한 단어가 있다.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가 기원일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가 그렇게 차이 났나?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하해 백제를 건국했으니 고구려와 백제 언어는 큰 차이는 없을 거 같고. 신라와는 언어가 차이가 있을 거 같으면서도, 한국어와 일본어만큼 차이가 났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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