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첫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왔더니 뭐부터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못 정했다. 일단 내일 QPR vs 아스날 경기 티켓을 사기 위해 QPR 경기장 위치를 알아봤고, 내친 김에 아스날 경기장 위치도 알아봤다. 그리고 지도를 한참 보며 어디 갈지 생각해봤는데, 잘 정리가 안 됐다. 넓기도 하고, 볼 건 많고...

 일단 책에 쓰여 있는 데로 트라팔가 광장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철 경로를 보니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내려 에로스 동상을 보고, 트라팔가 광장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는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였다. 다소 밋밋한 에로스(Eros) 동상이 역을 나오는 사람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사창가 거리였다는데, 그 흔적은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에로스 동상>


<피카딜리 서커스 주변>


<광고판엔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나왔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으로 향했는데, 멀리서도 광장임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앞으로 광장이 펼쳐져 있었고, 넬슨 기념탑(Nelson’s Column)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영화 촬영을 하는지, 인도 복장을 한 여자들이 꽤 있었다.





 미술관 등은 다음에 보자는 생각이 드니 그리 오래 머물 생각이 안 들었다. 그늘은 없고 뙤약볕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어딜 갈지 책을 대충 훑어보니 버킹엄 궁전에서 11시 반에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보고 세인트 공원을 지나 웨스트민트 대사원과 국회의사당, 빅벤 등을 보고 로프터스 구장으로 가서 예매를 하면 될 거 같았다.

 빅토리아 역에 도착해 나왔는데, 당최 지도와 길을 짝짓기가 어려웠다. 독일에서도 헤맸는데, 영국에서도 또...; 그나마 체코까지는 건물 벽에 거리 이름이 붙어 있어 쉬웠는데, 독일은 그런 게 없고, 교차로 등에 작은 표지판으로 거리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건물 벽에 붙어있긴 한 거 같은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잘 모르겠고, 차량은 좌측통행을 하니 이것 또한 헷갈렸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다행히도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이 보였다. 버킹엄 궁전 내부 투어를 하는 입구는 따로 있었는데, 사람이 많이 서있진 않았다. 11시가 좀 안 된 때였기에, 비싸기도 하고 해서 나도 그냥 지나갔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아니 그 전부터 보였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어디가 명당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곳곳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30분이나 남았는데 이 정도라니... 오늘 가까이서 사진 찍으며 보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보니 한국인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인도 관광객들이 많은 것도 다른 국가에 비해 다른 특징이었다.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군악대가 등장하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며 궁 정문으로 들어갔다. 명성에 비해 허무한 구경이었다.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세인트 공원을 가기로 했다. 공원 앞에 도착하자 또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아까와 다른 곳에서, 공원 맞은편에 있는 건물에서 새 군악대가 다시 등장하여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까진 못 보고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공원으로 들어갔다.



<버킹엄 궁전과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


<겨우 한 컷>


 세인트 제임스 공원(St James’s Park)은 가운데 호수를 낀 잔디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역시나 잔디밭 위로 사람들이 누워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늘이 드려진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런던 편을 다시 읽으며 일정을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좀 읽고 있는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옆에 앉으셨다. 어디서 왔냐고 하셔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한, 북한?' 하시며 장난기 있는 질문을 하셨다. 그러고는 오늘 어디 갈 거냐고 물으셨다. 웨스트민트 대사원 등 여러 곳이 계획에 있으나, 짧은 영어로, 대사원만 말했다. Abbey를 어베이라고 발음하자 못 알아들으셨다. 혹시나 하여 아베이라고 읽자 아.. 아베이 하시며 알아들으셨다. 비틀즈의 어베이 로드는 영국에선 아베이 로드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잘 못 발음하고 있었던건가...;;

 아무튼, 거기 간다고 하니 음... 하시며 거기 비싸다고..ㅎㅎㅎ 그리고 오늘같이 맑은 날 그리니치를 가라고 하셨다. 지하철 지도 있냐고 물으셔서 드리니 친절히도 가는 경로까지 잘 알려주셨다. 어디서 내려서 어떻게 갈아타고, 무슨 역에서 내려야 되는지 하나하나 잘 설명해주셨다. 그러시면서 대사원은 날 흐릴 때 가는 게 더 좋다고, 어차피 언제나 사람 많다고 하셨다.ㅋㅋㅋ 약간 대화가 끊기고, 어색함이 흘러, 그냥 지도 보는 척 하며 지도를 꺼냈다. 그러자 같이 보자시며 지도를 같이 펼쳐보시더니, 또 추천 경로를 알려주셨다. 템스 강변을 따라 남쪽에서 강북 쪽을 바라보는 게 아름답다고 하셨다. 이 경로 또한 공원에서 어떻게 나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걸어가면 되는지 잘 설명해주셨다. 아..... 이 친절함이여....ㅠㅜ

 뭔가 잘 설명해주셨는데, 내가 별로 말이 없고 대화가 잘 안 이뤄지자 심심하셨는지, 약속 있다고 하시면서 일어나셨다. 뭐, 진짜 약속이 있으셨을 수도 있고... 아무튼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건 그렇고... 할아버지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이게 문제다. 비단 오늘의 이 경우만이 아니고, 어제 술집에서도 그렇고...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버겁다. 영어를 못 하는 게 가장 큰 이유.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른다는 거. 대화술의 부재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할아버지가 저렇게 얘기를 꺼내셨으면 나도 뭔가 얘기를 이어나갔어야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축구 좋아하세요, 무슨 팀 응원하세요?’까진 떠올랐는데 갑자기 너무 생뚱맞은 질문 같기도 하고... 문맥에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으면 말 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유일하게 생각 난 주제를 꺼내들지 못 했다. 말하는 게 너무 어렵다.

 아무튼, 할아버지의 추천 경로를 따라갔다. 그 유명한 빅벤(Big Ben) 앞에는 사람들이 역시 바글바글했고,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다. 템스 강을 건너니 강변을 따라 음식점 등이 펼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빅벤>


<런던 아이(London Eye)>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과 빅벤>


<웨스트민스터 다리(Westminster Bridge) 너머로 보이는 국회의사당과 빅벤>



 음식점들이 많으니 아주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뭐라도 지금 먹어놓아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12시 반. 아주 늦진 않았구나... 좀 더 강변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강변 풍경은,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예쁜 진 모르겠다. 빅벤 있는 쪽만 좀 볼만했고, 다른 쪽은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시멘트 덩어리만 보이는 서울 보다는 난거 같기도 하다.

 강변을 따라 걷는데, 핫도그 + 감자튀김 + 음료수가 5파운드라는 노점상을 봤다. 5유로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싸보였다. 그러나 음식은 비참했다. 빵에 소시지 하나 껴주고는, 케첩이나 머스터드 같은 소스는 각자 뿌려먹으라고 했고, 기름기 많은 감자튀김과 -기름기 많은 정도에 비해선 많이 눅눅하진 않았다.- 500미리 정도의 음료수 한 캔. 이게 만 원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오, 런던....


<이게 무려 5파운드... 약 만 원!!!>


 다 먹고 강변을 따라 계속 걷자 런던 브리지가 나왔고, 강 건너편에 런던탑(Tower of London)이 보였다. 난 런던탑이라고 해서 높은 탑을 생각했는데, 성 같은 개념이었다. 실내는 일단 오늘은 안 간다는 생각에 런던탑도 지나쳤다.


<멀리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이 보인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Shakespeare’s Globe)>


<서더크 대성당(Southwark Cathedral)>


<벨파스트 호(HMS Belfast)>


<런던탑과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런던 시청사(City Hall)>



<런던탑 성벽>


<런던탑 뒤편>


 그리니치 가는 DLR 열차. 그나마 한국 지하철같았던 다른 런던 지하철과 달리 DLR은 유럽 지하철 느낌이었다. 표 찍고 들어가는 개찰구도 기계만 있고, 표 없이 들어가지 못 하게 하는 방지 막도 없었다. - 그러나 열차 타고 좀 가자 안에서 표 검사를 했다. - 그리고 문도 사람이 직접 버튼을 눌러야 했다.

 졸면서 가다보니 그리니치 도착. 그런데 햇볕이 너무 세서 의욕이 상실되는 기분이 들었다. 디스커버 그리니치(Discover Greenwich)는 대충 봤고, 페인티드 홀(Painted Hall)은 닫혀서 못 봤고, 채플(Chapel)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커티 사크(Cutty Sark) 호>


<채플 내부>


<왼쪽이 채플, 오른쪽이 페인티드 홀>


<퀸스 하우스(Queen’s House)>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은... 잘 모르겠다. 넬슨이 나폴레옹 이긴 거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잘 표현했구나 하는 느낌?


<국립해양박물관>


<그리니치 공원(Greenwich Park)>


<저 뒤의 도시는 런던>


 자오선 등을 보려면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로 들어가야 하는데 유료. 어차피 혼자 사진 찍어야 되서 굳이 안 들어가도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신 포도를 먹는 여우처럼, 전시관은 볼 게 없을 거라 믿었다.


<자오선을 기준으로 양발을 벌리고 서서 사진 찍는 사람. 한 쪽은 서반구, 한 쪽은 동반구.>


<시계와 도량형>


<날이 더워서인지, 목욕하는 새>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면서 또 졸면서 가다가 loftus 근처 도착. 근데 얘넨 지하철이 너무 좁다. 등치 큰 놈들이 어떻게 타고 다니는지... 물론 만들어진 지 오래 돼서 고치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튼 서울 지하철이 짱이다.


<좁은 런던 지하철>


 그런데 Loftus Road구장 모든 곳이 닫혀있었다. 허무, 허망...


<QPR 홈구장, Loftus Road구장>


<런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한 줄 서기를 장려하고 있다. 영국 에스컬레이터는 한 쪽으로 안 기울고 튼튼한가?>


 노팅힐 역으로 가서 론니 플래닛에 나온 식당 가봤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돌아섬. 난 비싼 거 먹겠다고 마음먹어도, 어느 정도에서 제한이 걸리는 거 같다.

 그냥 숙소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얼스 코트로 이동. 왜 이 빌어먹을 식당들은 맥주 한 잔 하면서 음식을 먹을 곳이 없는 건지... 그냥 펍 아니면 술 없는 음식점. 이러며 불평하다가 맥주도 파는 햄버거 집을 발견했다. 그런데 좀 비싼데다, 그렇다고 돌아 나갈 수도 없고...


<달랑 햄버거 하나지만 맥주까지 합쳐서 12.7파운드>


 인터넷 통해 아스날 경기 예약. 예약비가 근데 왜 이렇게 비싼거지...

 아스날 투어와, 밴드 공연 일자 등을 확인해보며 시간 보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맨체스터 숙소는 못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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