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포장기

Posted 2010. 8. 28. 03:38

비나 눈 오는 날 백화점이나 은행, 지하철 역, 상가 등에서 우산 포장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이 명칭을 지금 처음 안 것이지만) 우산 포장기는 이렇게 생긴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걸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사용을 거부했다. 잠시 쓰고 다시 버릴 텐데,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닐 재질이라 환경에도 안 좋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달리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면 바닥에 물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바닥을 닦아야 한다. 그 분의 일을 줄일 수 있는 걸, 나 때문에 그 분의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겨우 바닥 깨끗하게 닦았는데 갑자기 누가 들어와서 물 뚝뚝 흘리고 가면 얼마나 허탈하고 짜증날지.


이번에는 다른 상황이다. 비 오는 날 지하철을 탔다. 출퇴근길, 사람이 많다. 사람 사이에 끼어 서있는데 축축한 기분이 든다. 확인해보니 옆 사람 우산이 내 바지를 적시고 있다. 꼭 바지가 아니더라도, 가방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맨살에 빗물이 묻을 수도 있다. 비 오는 날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짜증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니 우산 포장기를 이용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나는 맨 처음 환경 때문에 포장기 사용을 꺼린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니 포장기에 이용되는 비닐은 HDPE로 하이덴 재질이라는 것인데, 재활용이 된다고 한다.1)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이걸 얼마나 분리수거하여 재활용시킬지는 확신이 안 선다. 그냥 일반 쓰레기와 같이 매립돼버리면 재활용이 된다고 해도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한다.

   -> 우산 포장기를 안 쓰는 게 조금 더 좋으려나?


비용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통칭하여) 빌딩주 입장에서는 우산 포장기는 추가 비용이다. 바닥 세 번 닦을 거 네댓 번 닦았다고 피고용인에게 돈을 더 주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산 포장기는 한 번 구입하면서 비용이 들고, 그 안에 든 비닐을 충전하기 위해 계속 비용이 들 것이다. 대신 포장기를 이용하면 바닥이 들 더러워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므로 건물의 청결에 대한 이미지는 좋아질 수 있다.

   -> 이 경우 역시 우산 포장기를 안 쓰는 게 조금 더 좋으려나?


사람의 감정, 불쾌감. 물에 젖고 얼룩 진 더러운 바닥을 보거나 빗물로 인해 옷이 젖으면 불쾌감을 느끼는 건 당연할 것이다. 사람은 보통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기기를 이용한다. 이 경우엔 불쾌감을 줄이기 위해 우산 포장기를 이용한다. 불편함이나 불쾌감은 모두 사람의 감정. 이 요인은 위의 환경이나 비용의 문제를 상쇄시킬 만큼 강력한 변수인가.


사실 사람의 감정을 수치화하여 비교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일단 사람마다 모두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방울이라도 빗물이 튀는 걸 용납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바닥이 더럽거나 빗물이 튀는 데 무감각할 수도 있다.


우산 포장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안다. 사람들도 이걸 이용하는 이유는 어쩌면 불쾌감이나 이런 것보다도, 앞 사람이 이용하니깐, 그냥 건물 앞에 놓여 있으니깐 습관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건 아닐지.


주저리주저리 써놓긴 했는데, 결론을 잘 못 내리겠다. 지금까지 쓴 논지로 봐서는 우산 포장기를 안 쓰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오히려 난 요즘 우산 포장기를 근근이 이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 이후에는 지하철 탈 때 우산 포장기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 주제를 생각한 지 꽤 되긴 했는데, 참 쓰잘데기 없는 걸로 별 생각 다 한다는 생각도 들고... 누가 결론 좀 내줘요~ ㅎㅎ


1) 어설프게 찾아본 결과 재활용되는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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