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놀기

Posted 2011. 7. 11. 00:01
"학점이 별로 안 좋네요, 이유라도 있어요?"

"학점에 신경 많이 안 쓰고, .... 그냥 다른 책들 읽었어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아니면 순발력을 보려고, 그것도 아니면 진짜로 궁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것도 아니면, 널 뽑고 싶긴 한데, 학점이 좀 걸리네... 핑계라도 좋으니 뭐라고 어필해봐.. 이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입사 면접을 보면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사실, 할 말은 없지. 과 공부를 열심히 안 한건 사실이거든.. 그렇다고 '적당한 핑계'를 대자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거라... 여행을 다녔어, 알바를 했어, 이성 문제가 있었어, 술 먹거나 놀러다니길 했어, 게임에 빠졌어... 아무것도 안 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뭘 했다고 하기엔 그다지 한 게 없거든.

1월 20일자 <지붕뚫고 하이킥>, 92화를 보면 지훈(최다니엘 분)과 세경(신세경 분)이 조용히 놀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학창시절 공부만 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놀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놀았다는 지훈의 말에 세경은 조용히 노는 게 뭐냐고 한다. 그러자 지훈은 세경을 LP가 가득한 음반 가게로 데려가 음반을 들으며, 이렇게 앉아 음악을 듣는 게 조용히 노는 거라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래, 저런 것도 노는 거지, 조용히... ㅎㅎ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논다는 게 뭘까'이다. 일하거나 공부하는 걸 뺀 대부분의 활동을 논다고 해야 하는 건지, (책 읽거나 음악 듣는 것 등을 정적인 것이라고 하면) 동적인 활동을 해야 논다고 하는 것인지, 이것도 아니라면 일상적이지 않고, 딱히 도덕적이거나 규범적인 거라고 할 수 없는, 그러니깐, 만화보고, 컴퓨터 게임하고, 술 먹고 하는 등의 활동을 노는 것이라고 하는 것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럼 대학교 때 놀았나? 학점 안 좋고, 학과 공부도 열심히 안 했으니 놀았다고 생각되겠지. 그럼 앞에서 말한 첫 번째 노는 부류에 들어가려나. 그런데 굳이 한 일을 손꼽아 보라면 책 읽거나, 음악 듣거나, 아니면 웹서핑. 블로그도 시작한지 몇 년 된 게 아니니 학창시절과 겹치진 않고. 두 번째 부류엔 못 들어가네. 아, 만화는 많이 봤구나.ㅋㅋ 그럼 무려 세 번째 부류에 포함되는 건가?

(면접용 질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가끔 물어본다, 집에 가서 뭐하냐고. 웹 서핑 하고, 책 읽고, 음악 듣는 게 거의 다인지라, 그냥 뭉뚱그려서 컴퓨터 좀 하면서 뒹군다고 말하긴 하는데, 그럼 대부분의 반응은, 에이, 심심하겠네요, 재미없겠네요, 다 똑같네요, ... 난 별로 안 심심하고, 요런 것들도 재밌는데... -_-; 그러나 난 별로 말 수도 없고 하니 딱히 반박하지 않고 그냥 웃으며 넘긴다.

혼자 하는 정적인 활동을 논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러면 노는 건 상호작용이 필요한 건가?

노는 거 갖고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자체도.. 참 재미없네... (참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이겠네.)

---------------------------------

위 글은 과거(2010/01/22)에 써놓고 비공개로 남겨둔 내용을 아주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일상의 끄적임 > 쵸딩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근황(... 이라면 근황)  (0) 2015.02.26
생존 신고 겸...  (0) 2012.11.05
영어 시험  (0) 2011.06.20
야근에 관해 요즘 드는 생각  (0) 2010.07.12
[한컴테스트] 아르헨티나전 관전 후  (0) 2010.06.17
Bookmark and Share   AddThis Feed Button     rss?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