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빈둥거리다가 나갔다. 포토벨로 마켓이 유명하다고 하여 노팅힐(Notting Hill)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서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다 포토벨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11시가 되기 전인데도 포토벨로로 가기까지 인도가 빽빽하게 차있었다.

 포토벨로(Portobello) 마켓은 벼룩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잡다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옷, 시계, 공예품, CD/LP, 심지어 비디오테이프까지... 그리고 당연히 먹을거리들... 중고 제품도 많이 팔고 있었다. 얘네는 노점상 관리를 안 하는 걸까. 나쁜 의미가 아니라, 한국은 노점상들 거리를 더럽히고 세금도 안 낸다고 다 몰아내는데, 여기는 그런 관점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없을까? 오늘 여기만 봐도 건물에 가게 내고 있는데 그 앞으로 쫙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이들이 가게를 거의 가리기 때문에 자기 가게 홍보가 잘 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가게 주인들의 불만은 없을까. 얘네한테 세금은 걷나. 이 마켓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됐기에 건드리지 못 하는 걸까. 나온 물품의 신기함보다 저런 쪽으로 더 궁금증이 들었다.




<사람 많다.>


<포토벨로 거리의 알록달록한 집>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먹을거리도 있고.>


<도로도 깨끗하고, 집도 깨끗하고... 부촌인가?>


 이후 The Noah and the Whale의 현장 티켓이 있나 확인도 해 볼 겸 코벤트 가든 쪽으로 갔다. Palace Theater를 힘겹게 찾아갔는데 Singin' in the Rain 뮤지컬 전용 공연장 같았다. 게다가 The Noah and the Whale의 포스터 한 장 발견할 수 없었다. 티켓 판매자한테 내일 표 파는 지 물어보니, 뭔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면서 뮤지컬을 보러 온 거냐, 뭘 하러 온 거냐고 물었다. 순간 벙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밴드 공연 표를 구하러 왔다니깐, 여기는 뮤지컬 표 파는 데라고, 티켓 마스터에 문의하든지 내일 와보라고 했다. 그런데 표정이 살짝 짜증 난건지, 어이없어하는 거 같기도 한 표정 같고, 좋게 보면 내 질문에 답을 못 줘서 미안하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처음엔 난 여기서 안 하는데 왜 찾아왔냐는 식으로 들어서,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음 당장 검색해보고 싶었다. 찾아볼 방도도 없고, 표는 구하고 싶고... 순간 허탈함과 당혹감이 찾아와 어디로 갈지 방향 감을 잃었다.

 기운이 빠진 체로 코벤트 가든 역 쪽으로 돌아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마켓을 둘러보았다. 포토벨로와는 달리 마켓 건물이 크게 들어서있고 그 안에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는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한두 명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요다 복장을 하고 지팡이로만 의지하여 공중에 떤 사람이라든지, 물구나무 쇼를 하고 다른 사람은 북을 치며 흥을 돋운다든지... 현대판 시장 광대놀음이었다. 유럽에는 곳곳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는... 있었나? 기억이 안 나네.

 다음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과학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근처에 굴 등 해산물 전문점이 있대서 거기서 점심을 먹어볼까도 생각했다. 안내 지도에는 중간 가격이라고 쓰여 있어서 살짝 안심을 했는데, 꽤 비싼 식당이었다. 굴 6개에 12 ~ 14 유로 정도는 했던 거 같다. 굴이 어떻게 나오는 지도 모르겠고, 6개먹어서 배부를 리 만무하니 그냥 다른 데서 먹기로 했다. 박물관 내부에서 먹을까 하고 가다 보니 지연이가 알려준 Pret이 보였다. 싸다고 하여 기대를 하고 들어가 봤는데 그냥 박물관에서 파는 샌드위치 등과 큰 차이가 없는 가격이었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박물관에서 먹기로 했다.

 자연사박물관은 들어가는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유료 표라도 사나 싶었다. 저길 안 가고 과학박물관을 가기로 한 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내부 식당을 갔는데, 사람은 많고, 자리도 없어 보이고, 게다가 빵 종류도 별로 없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이 식당이 큰 거였다. 지하를 가봤는데 식당은 더 작았다. 그냥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가서 밥만 먹고 오자는 생각으로 다시 1층으로 올라왔는데 사람이 좀 줄었기에, 가기도 귀찮고 하여 그냥 여기서 샌드위치와 바나나/딸기 스무디 주스를 먹었다.

 영국에서는 진짜 밥 먹기가 너무 힘들다. 가격이 감당이 안 된다. 배부르게 먹은 것도 아닌데, 이 두 가지가 6.45파운드다. 만 2천 원 정도는 한다. 이게 대체 말이 되는 가격인가. 식당에서 밥 먹을라 치면 10파운드 이상은 기본이다. 뭘 엄청난 걸 먹는다고 한 끼에 2만원이 넘고.... 지금의 환율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외국에 나가도 비슷한 물가를 체감할 수 있도록 바뀌면 좋을 거 같다. 그러면 지금의 환율과는 역이 되겠지. 지금 구조로는 부유한 나라 사람은 외국 나가서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쓰고 배불리 먹고, 다른 돈 쓸 여유가 많지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밥 한 끼조차 먹기 힘겹다.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우선 맥주를 마신 것도 아닌데 너무 졸렸다. 의자에 앉아 몇 분 졸기까지 했다. -_- 그리고 애들이 너무 많다. 사람도 많은데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누가 서양 애들은 막돼먹지 않았다고 했는가. 애들 다 똑같다. 설명은 다 영어고, 별로 흥미를 못 느끼게 하는 고철덩어리들만 있고... 그냥 짜증이 나서 자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아까 길었던 줄은 없어져서 빠르게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리버풀 세계 박물관의 확장판 같긴 했지만, 어류나 곤충 등은 리버풀 박물관이 더 좋았던 거 같다. 실제 생물이 더 많았기에 그런 거 같다. 메인 홀에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무슨 유료 티켓을 사고 들어가나 했더니, 그건 아니었고, 공룡 전시관을 들어가는 인원수를 제한하며 입장시키는 것이었다. 역시 제일 인기 있는 관이었다. 난 줄 서기 싫어서 안 들어갔다.-_- 여기도 애들 많고, 사람 많고, 정신이 없어서...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공룡 뼈대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위에서 보면 이런 모습>


<다윈(Charles Darwin) 상>


<박물관에 들어오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비가 와서인지 실내로 들어오려는 거 같다.>


<광물 전시관>


<자연사박물관 외관>


 어제 뮤지컬을 보고 난 후부터 갑자기 의욕 상실이다. 그냥 런던이, 영국이 지루해졌다. 여행 자체가 지루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두 달 여행하면 이렇게 권태기가 오는 걸까. 여기가 영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였어도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런던이 지루하면 인생이 지루해진 거라나.. 뭐 그런 말이 있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 내 인생이 지루한 건 맞지만, 런던만 지겨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체 이곳에서 뭔 재미를 느껴야하나. 이 책임은 반은 빌어먹을 물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곤하면 어디 쉬면서 먹으면 좋은데 비싸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배 주리며 다니고...

 아무튼 피곤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혹시 숙소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그냥 가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특히 오늘같이 짜증나는 날에는 항상 들어맞는다. 벨을 눌렀는데 아무도 안 나온다. 장을 보러 갔나보다. 어쩔 수 없이 영국 박물관으로 향했다.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도 사람 떼거지로 많고 하여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차라리 자연사/과학박물관을 가느니 여기를 갈 걸 그랬다. 장물이긴 해도 볼 건 훨씬 많았다. 그러나 폐장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날라리 관광객 모드로 둘러보기로 했다. 안내지도에 1시간밖에 없으면 자기네가 표시한 것만 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마치 미션 수행을 하듯이 지도를 보며 체크된 유물 사진을 찍고 바로 다음 유물로 넘어갔다. 거의 다 찾긴 했는데 두 개, 우어의 왕실 게임(The Royal Game of Ur)과 사무라이 갑옷(Samurai armour)은 못 찾았다. 이렇게 노는 재미도 쏠쏠했다. 머리에 남는 건 없지만...


<A. 루이스 체스맨(The Lewis Chessmen)>


<B. 옥서스 보물(Oxus Treasure)>


<D. 폴트랜드 도자기(The Portland Vase)>


<F. 용무늬 칠보 자기(Cloisonné jar with dragons)>


<G. 이페 두상(Ife head)>


<H. 이스터 섬 석상(Easter Island statue Hoa Hakananai’a)>


<I. 로제타스톤(The Rosetta Stone)>


<J. 아시리아인의 사자(Assyrian Lion reliefs)>


<K. 파르테논 신전 조각(Parthenon sculptures)>


 안내지도에 좀 걸어가면 싸고 괜찮은 펍이 있대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다보니 별점 5개짜리 펍이 보였다. 괜히 거기까지 힘겹게 찾아가고, 맛 보장을 못 하느니 그냥 여기서 먹기로 했다. 메인 중 제일 싼 피쉬 & 칩스를 7파운드 이상 주고 먹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11파운드 넘는 건 기본.

 음식을 시키기 전 뒤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었다. 오~ 이런 경우 오랜만이야..ㅠㅜ 자기네는 올드 펍을 찾아다닌 다고, 너도 관심 있으면 구글링하라고 했다. 할 일 없으면 자기네랑 같이 가자고 했는데, 비록 약속이 없었음에도 약속 있다고 했다. 말만 통하면 생각해보겠는데, 말도 안 되지, 게다가 말수도 없지... 그냥 내가 겁먹어서 거짓말을 했다. 미안...~_~

 별점 5점짜리 식당이었음에도 생선튀김은 생선튀김이다. 두 번째 먹었던 집보다는 괜찮았지만 별점 5점에 부흥하지 못 하는 튀김이었다. 그래도 감자튀김 양은 많았으니 용서해주마~


<총 11.55파운드>


 내일은 런던 근교를 가보자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런던 근교 갈 만한 데를 찾아보고, 친구 동생한테도 어디가 좋을지 물어봤다. 친구 동생은 캠브리지나 옥스포드를 추천해줬다. 나는 브링튼과 세븐 시스터즈 공원을 검색했었다. 그런데 찾다보니 가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또 - 특히 공원으로 가면 - 점심 먹을 것과 입장료, 교통비 등을 생각하니 더욱 가기 싫어졌다. 내일 숙소에서 빈둥거릴까 까지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난 게 Abbey Road였고, Led Zeppelin과 관련된 건 뭐 없을까 생각하며 검색을 해대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내일도 시간을 어영부영 때우며 보내겠지. 확실히 집에 갈 때긴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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