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을까하다가 굶고 구시가 쪽으로 갔다. 여전히 발은 아픈데, 확실히 크록스를 신을 때보단 운동화를 신으니 들 아프다.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brücke)를 건너니 웅장한 호프 교회(궁정 교회, Hofkirche)가 맞이했다. 들어가려 했으나 13시 이후에 개장한다고 하여 다른 곳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호프 교회>


 궁전(Residenzschloss) 쪽으로 들어가니 보물 박물관(그뤼네스 게뵐베, Grünes Gewölbe)이 먼저 나타났다. 구 보물 박물관 따로, 신 보물 박물관 따로, 통합권 따로,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의 티켓을 팔았다. 의외로 영어 설명이 불친절해서 당황했다. 정확히 통합권이 어디까지 다 갈 수 있는 건지 모른 체 그냥 통합권을 샀다. -_-

 티켓을 끊고 구 보물 박물관으로 들어가려하자 카메라는 보관함에 두고 오고, 아직 (표에 쓰여 있는) 30분이 안 됐으니 10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카메라랑 가방을 보관함에 두고 앉아서 생각해보니 30분이 됐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의 손목시계를 슬쩍 보면서 시각을 확인했다.ㅎㅎ;

 그나마 비수기이고, 아침에 가서 그런지 책에 쓰여 있는 만큼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러나 시간 단위로 입장객을 받고, 전시관 내에서도 방 입장에 시간차를 두는 거 보면 붐비는 걸 사전에 어느 정도 차단하는 거 같다. 전시관 내에서 방 입장에 시간차를 두는 게 뭐냐면, 첫 번째 방을 본 후 다음 방으로 넘어가려면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 앞에 안내원이 있고 표를 검사하면서 그 문을 열어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10초 정도의 시간차가 생기는 거 같다.

 금, 은, 동, 호박, 상아 등 여러 종류의 재료를 갖고 보물을 만들어 놓았다. 동양인 손기술이 좋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그런 차이도 없는 거 같다. 특히 금속으로 조각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섬세한 근육과 핏줄까지 나타내던데, 뜨거운 금속을 손으로 만지는 건 아니겠지?

 보물 박물관을 보고 다른 전시관으로 갔다. 2차 세계대전 관련된 그림이 있다던데, 못 찾았다. -_- 발도 아팠기에 천천히 걸어 다니며 둘러봤다.


<궁전 앞>


<궁전 뒤쪽>


 다 본 후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론니 플래닛에서 추천해준 식당은 관광지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발이 아파서 과연 거기까지 가야되나 망설였는데, 다른 식당을 어디 갈까 고민하기 싫어 그냥 추천지로 갔다. 식당 앞에 도착했는데 주변에 식당이 많았고, 추천지는 좀 가격이 있는 곳 같다. 다른 곳은 사람이 좀 있는데 여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메뉴판에 책에 쓰여 있는 메뉴를 못 찾았다. 여길 그냥 갈까 다른 곳 갈까 또 두리번거리며 고민하다가 그냥 여기서 먹자는 결론을 내렸다.

 보헤미안 어쩌구 + 돼지고기가 있어서 그걸 시켰다. 체코를 떠났음에도 계속 보헤미안 음식을 먹게 된다. 음식 생김새는 보헤미안 음식에 항상 나오는 하얗고 부드러운 빵과 함께, 제육볶음 같은 돼지고기가 나왔다. 맛도 들 맵고 주로 토마토소스로 했다의 차이일 뿐, 제육볶음 생각이 났다. (고기는 두툼한 게 돼지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 같았다.) 맥주는 파울라우너 바이스비어를 마셨다. 역시 밀 맥주가 맛있긴 하다.



 아침을 안 먹었기에 이 정도 가격은 용서된다고 자기합리화 한 후 다시 관광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모교회(Fraunkirche)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앞에 마틴 루터 동상이 서있었다. 파괴된 후 다시 지어서인지 내부는 너무 새 교회 느낌이 났다. 그래서 오래된 성당의 그런 웅장하고 무게 있는 느낌은 잘 안 났고,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녹아내린 십자가도 이게 녹아내린 건지 확연히 눈에 띄는 건 아니었다.


<성모교회와 마틴 루터 동상>



 알베르티눔(Albertinum)과 신 거장 갤러리(Galerie Neue Meister)를 지나쳤다. 신 거장 갤러리는 어차피 근현대 미술이라 봐도 또 안드로메다 행일 게 분명하고, 남은 시간도 애매하여 그냥 통과하였다.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 거장이라고 해서 현대 미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흐나 드가 등 르네상스 이후 시대부터 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시대의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 그리고 사진 한 컷에 닮기 힘든 퓌어슈텐추크(군주의 행렬, Fürstenzug)로 다시 와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브륄의 테라스(Brühlsche Terrasse) 위에서>




<군주의 행렬>



 그 후 다시 호프 교회로 가서 입장. 성모 교회보다 내부가 더 컸는데, 정작 보려했던 아우구스투스의 심장은 못 찾았다. 어설픈 정보를 갖고 간 패착이었다.





 호프 교회에서 나와 츠빙거 궁전(Zwinger)으로 향했다. 한 쪽은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가운데 안뜰 마당이 잔디보다 흙바닥의 비율이 높아 좀 황량한 느낌도 들었다.


<젬퍼 오페라하우스(Semperoper)>



<츠빙거 궁전과 작센 왕 요한(König Johann) 동상>





<각 건물마다 전시관이 있다.>




 이후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구 거장 갤러리(Galerie Alte Meister)로 갔다.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가 있는 곳인데, 입장하자마자 보여 좀 김이 센 느낌이었다. 원래 하이라이트는 좀 나중에 나와 줘야 하지 않는가. 3층으로 구성 된, 꽤 큰 전시장이었다. 종교 그림도 많고, 풍경/정물화, 인물화도 있었다. 여느 미술관과 비슷한 느낌의 중세 전시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술에 무지한지라 작가 이름을 봐도 잘 모르겠고, 다른 미술관에서 본 종교 미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감상이 나빴다는 건 아니다. 이런 그림은 봐도 봐도 그리 질리진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하며 지나가도, 잘 그렸네 느낌은 받으니. 이게 현대 미술관에서 내가 받는 느낌과 다른 점이다. 현대 미술은 대체 뭘 그린 건지, 잘 그린 건지를 모르겠다.


<구 거장 갤러리 건물>


 구 거장 갤러리 티켓에 수학/물리 전시관과 접시 전시관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수학/물리 전시관은 시계와 컴퍼스, 지구본 등만 있고 별로 재밌는 전시관은 아니었다. 접시에 큰 관심도 없고 시간도 애매하여 츠빙거 궁전에서 나와 숙소로 향했다.



 목이 너무 말라 강변에서 맥주 한 잔을 했다. 어제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고 강변에서 마시기에, 저 잔은 관리 안 하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맥주를 팔 때 잔 보증금 2유로를 받았다. 다 마시고 갖고 오면 다시 2유로를 주는 것이다. 잔 값과 2유로 중 어느 게 더 비쌀까 잠시 생각해보았으나, 잔 값을 모르니 어느 게 이득인 지 알 순 없었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나가기 전 숙소 직원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베를린 간다니깐 도움이 될 거라며 베를린 지도를 줬다. 문신에 피어싱하고, 덩치도 있는 여직원이어서, 겉모습만보고 처음엔 살짝 쫄았는데 친절한 사람이었다. 뭐, 어제 처음 봤을 때도 반갑게 맞아줬으니...ㅎㅎㅎ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보행자 거리, 프라거 거리(Prager Straße)를 잠깐 나가봤으나 큰 상점이 양옆으로 있다는 거 말고 별다른 게 없어서 역으로 돌아왔다. 수돗물을 퍼마신 거 말고 물을 제대로 마신 게 며칠 됐고, 목도 마르고 하여 물을 사마시기로 했다. 탄산수를 피하기 위해 패트병을 흔들어봤는데 거품이 별로 안 났다. 그러나... 열어보니 탄산 소리가... ㅠㅜ 단 맛 없는 사이다 맛이었다. 적응이 될 듯하면서도 어색하고, 괜히 목만 더 마른 느낌이 들었다.

 열차는 어제 내가 프라하에서 타고 온 열차와 동일한 EC172였다. 어제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드레스덴에서 확실히 사람이 많이 타는 건지, 여유 있게 앉아 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 칸 빼고는 다 6명이 한 방에 앉는, 이탈리아에서 고생하며 앉아갔던 그런 열차 칸이었다. 유럽 애들은 덩치도 클 텐데 왜 마주 보고 앉는 좌석을 그리 많이 만들어 놓는지 알 수 없었다.

 기차에서는 베를린 관련 내용과 영국 관련 내용 책을 읽었다. 이젠 진짜 슬슬 영국 일정을 정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런던을 며칠 있어야 될지 감이 안 온다. 리버풀, 맨체스터, 에든버러 모두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러나 저기 갈 때 교통편을 어떻게 할지와, 며칠, 언제 있을지 생각해야 하니 머리가 아파오고 귀찮아졌다.-_-

 베를린으로 향하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졌고, 날도 흐려졌다. 드레스덴은 그리 더웠건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우울한 날씨였다. 여행 전부터 베를린은 우울한 날씨가 어울릴 거 같았다.


 조금 연착되긴 했지만, 드디어 베를린 입성! 론니 플래닛에서 본 1주일 교통권을 사려 했는데, 관광 안내소가 안 보인다. 기계에서 뽑아보려 했는데, 어떤 걸 사야하는 지 잘 모르겠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그냥 기차 전용 안내소에 물어보니 관광 안내소 위치를 알려주었다. 진작 물어볼걸.;;

 1주일 머물 건데 교통권이 난지, 베를린 카드가 난지 물어보니 교통권이 싸니 그걸 하란다. AB 구역만 가능한 카드기에, 포츠담 갈 때 어떻게 하냐 했더니, 그 때 오면 할인 티켓을 주겠다고 한 거 같은데, 정확히 알아들은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 날 되면 알게 되겠지.

 기차역에 지하철역이 붙어있는데, 게이트가 너무 많다. 어떤 게이트로 가야되나 안내판을 보니 한 아저씨가 접근해 도와주겠다고 했다. 역 이름을 말해주니 15번 게이트에서 오는 거 아무거나 타라고 알려주었다. 아... 친절한 아저씨, 고맙습니다.ㅠㅜ

 숙소 근처 역에 도착하여 알려준 데로 갔는데, 바로 앞에 숙소가 보일 거라더니, 안 보인다.-_- 또 두리번거리다 직진해서 갔더니 건물 경비 아저씨가 플러스 호스텔 가냐고, 이 쪽 방향 아니라고 하면서 길을 안내해주었다. 친절한 아저씨, 고맙습니다.2 ㅠㅜ

 로비에 들어갔는데 줄이 너무 길게 서있다. 안내원은 두 명 있고, 한 쪽은 단체 손님 같다. 내 뒤에 온 여자가 근데 갑자기 새치기를 한다. 사실 줄이 명확히 서있던 게 아니었는데, 아주 그냥 프리하게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가려는 사이 갑자기 또 내 뒤에 있던 남자가 내 앞으로 간다.-_-^ 누가 서양인 질서 잘 지킨다고 했나. 그 남자는 간단한 질문만 한 거여서 바로 내 차례가 되긴 했으나, 이 호스텔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아졌다.

 로비에서 방까지 걸어가는 데 발이 너무 아팠다. 여행에 대한 회의감이 괜히 밀려왔다. 비도 오고, 식당 찾으러 나가 돌아다니기도 무리일 거 같아 씻은 후 숙소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피자 한 판에 음료, 디저트가 한 세트로 10유로였다. 베를리너라는 맥주를 처음 마셔봤는데 필스너 계열임에도 별로 안 써서 좋았다. 그리고 디저트로 티라미슈와 아이스크림 중 아이스크림을 택했는데, 세 덩어리나 주었다. 확실히 얘넨 많이 먹는구나.ㅎㅎㅎ 10유로 이상의 저녁 식사였다.

 그리고 1 shot free 쿠폰도 얻긴 했는데, 바에 외국인들이 많이 앉아있고, 뭐를 선택하기도 귀찮고, 발도 아프고 해서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갔는데, 백인 남자들이 앉아 술 마시며 얘기하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내 자리인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어차피 말주변머리도 없고, 잘 알아듣지도 못할 거, 대화에 안 낀 게 편하긴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같이 대화에 낄거냐든지, 어디서 왔냐든지 하는 의례적인 말도 안 건 게 좀 괘씸하긴 했다. 동양인 무시 하냐. 쩝;;

 지도에 내일 대충 갈 곳을 찍어두고 런던 숙소 등을 찾아봤다. 그런데 며칠 머물 지 결정이 안 난 상태라 어떻게 예약할지, 호스텔로 할지, 민박으로 할지... 결론을 못 내렸다. 여행 정보 얻기에는 민박이 좋은데, 아침을 한식으로 주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고, 호스텔은 좀 싸지만 아침 안 줄 수도 있고, 각 정보를 다 내가 알아내거나, 영어로 물어 부정확하게 얻는 수밖에 없고..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발도 아프고... 괜히 서글퍼지고... 귀찮아지고.... 아무 것도 결정내린 거 없이 그냥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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