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위주로 돌려 했는데 사장님이 코스를 짜주셨다. 그런데 지나가게 되는 곳이 내가 가려던 곳과 많이 겹쳐 도움이 되는 루트였다. 특히 산타 마리아 그롤리오사 데이 프라리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Gloriosa dei Frari) 뒤편의 전시관, 스콜라 디 산 로꼬(Scuola Grande di San Rocco)는 잘 몰랐는데 덕분에 들르게 되었다.

 아침에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하더니 프라리 성당 다 와가니 갑자기 쏟아졌다. 프라리 성당 가는 길도 은근히 헤맸다. 내가 길을 잘 못 찾은 거겠지만,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 다녔다. 오후에도 익숙한 길임에도 한 골목 잘 못 들었다가 헤맨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어차피 최단경로로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갈 수 있는 경로는 무한하지 않은가. 그리고 신기한 건,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여기가 어딘가 하며 당황하며 길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있는 것이다. 이런 게 베네치아 골목 다니는 맛이 아닐까 한다.


<대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산타 마르게리따 광장(Campo Santa Margherita)>


 스콜라 디 산 로꼬에서 먼저 학생이냐고 물어 0.1초 고민 후 맞다고 했다. 학생증 달라는 말도 없이 학생으로 해줬다. 아저씨가 불쌍한 동양인 하나 구제하는구나.ㅎㅎ 이 전시관에는 벽과, 특히 천장에 엄청 큰 그림이 있는 게 특징이다. 천장 그림을 쉽게 보라고 휴대할 수 있는, A4 용지만한 거울을 여러 개 준비해 놓은 게 특이했다. 확실히 편하게, 잘 보였다.


<산 로꼬 성당(Chiesa di San Rocco)>


<스콜라 디 산 로꼬>


 스콜라 디 산 로꼬를 나와 리알토 시장 쪽을 지나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건너 두깔레 궁(Palazzo Ducale)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비는 완전 개고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비라고 아침 일기 예보에 그랬는데, 이거 불길하다. 아침에 사장님이 이탈리아는 일기 예보가 아니라 중계라고 하셨는데, 진짜 거꾸로 가는구나.


<산타 마리아 그롤리오사 데이 프라리 대성당 뒤편>


<산타 마리아 그롤리오사 데이 프라리 대성당>



<장터 같은데 일요일이어서인지 열리지 않았다.>




<리알토 다리>


 두깔레 궁을 포함해, 산 마르코 성당, 종탑 모두 줄이 길었다. 일요일인데다 날이 맑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기서도 학생이라고 해봤는데 안 통했다. 학생증 있냐고 물어서 두고 왔다고 하니 그냥 일반 요금 받음.-_- 전체적으로 스콜라 디 산 로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콜라 디 산 로꼬의 확장판 같았다. 그리고 지하 감옥도 들어갔는데, 이때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를 건넜다. 지나간 죄수들이 탄식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카사노바도 건넜다고 해서 더 유명하다. 외부에서는 탄식의 다리라고 사진만 찍어, 실제로 사용하는 다리가 아닌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용되고 있는 다리였다. 하긴, 책에도 죄수들이 건넜다는 다리이니 사용 안 할 리는 없겠지.





<감옥 내부>


<탄식의 다리 위에서>



 두깔레 궁에서 나와 점심 먹을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트립 어드바이저나 미셸린, 혹은 이런 종류의 스티커가 붙은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또 이렇게 찾으려고 하니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을 헤매고, 그냥 아무데나 갈까 하는 차에 트립 어드바이저 4점짜리 식당 발견. 가격이 좀 비쌌는데,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 부여로 게살 스파게티를 골랐다. 19.9유로였고 10% 자릿세가 붙는다고 쓰여 있었다. 마실 거 안 마시려다 웨이터가 두 번이나 물어봐 그냥 맥주 주문까지..-_- 스파게티에서 가격에 비해 게살을 찾는 건 힘들었다. 게살이 다 부스러져있어 줄기처럼 조각나있었다. 올리브 + 약간의 크림으로 추정되는 소스로 된 스파게티였다. 면은 살짝 덜 익은 듯 했지만 맛은 괜찮았다. 자릿세 포함 28.84유로가 나왔다. 28.85유로를 냈는데 얘네는 모른 척 하며 1센트 안 주네. 어차피 받아야 동전 처리도 귀찮고, 그냥 나왔다.ㅎㅎ

 길을 또다시 한참을 헤매고 겨우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간 후 아카데미아 다리(Ponte dell’Accademia) 쪽으로 갔다.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a)을 가기 위해서였다. 아까 두칼레 궁에서의 실패 때문에 학생 드립은 시도조차 안 하고 그냥 일반 요금을 냈다. 르네상스 전후의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한 작품 앞에 앉아 좀 졸다가 -_- 마저 구경하고 나왔다. 좀 더 있다갈까 싶었는데, 뒤쪽 두 미술관에서 얼마나 소요될지 몰라 그냥 나오기로 했다.


<길 헤매기 시작>


<어디지?>


<산 마르코 광장 도착>



 다음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Collezione Peggy Guggenheim)...으로 가다가 지나쳐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la Salute)까지 가버렸다. 온 김에 성당 내부를 구경했는데, 그 크기에 비해 내부는 그다지 화려하진 않았다. 대신 내부를 더 보려면 돈을 내라기에 그냥 나왔다. 그리고 다시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아 돌아갔다.


<휴식 중>


<아카데미아 다리>






 이 미술관은 꽤 비쌌다. 그리고, 현대미술이었다. 아... 현대미술...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현대미술이라는 걸 들었음에도 왜 여길 들어왔을까. 전시관도 작아서 볼 그림은 얼마 없었다. 정원에 나와 그늘 쪽에 앉아 멍 때리고, 좀 졸고 하다가 나왔다. 아... 돈과 시간이 아깝고, 아카데미아에서 더 여유 있게 볼걸 그랬다.

 그리고 푼따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를 가려했는데... 휴관이란다... 아... 시간이 많이 남는구나. 해변을 따라 자떼레 역으로 갔고, 젤라또를 사먹으며 다빈치 전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도 휴관...ㅠㅜ 그냥 숙소로 갔다.




<머물렀던 숙소>


 숙소에서 내일 일정을 점검도 할 겸 비행기 체크인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30시간 전에 하라던 예전 프린트 내용은, 메일에 0시간 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알이탈리아 홈페이지에서 체크인이 안 되었다. NotOpenFlight이라는 메시지만 나왔다. 뭔가 불안하여 마르코 폴로 공항 홈페이지에서 내일 비행기 시간표를 확인해봤는데 내가 탈, 13:15에 떠나는 비행기가 없었다. 점점 불안해져갔다. 알이탈리아 홈페이지에서 내일 비행기 예약을 해보려고 하니 19:05 비행기만 나왔다. 아... 어째야할까... 걱정만 가득해지고, 7시쯤이 되었다.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낮에 돌아다닐 때 코스라도 먹을 테다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론니 플래닛과 트립 어드바이저 사이트에서 맛집 좀 검색하다 일단 나갔다. 자떼레 역 근처 해변을 걸으며 식당을 확인해봤는데 겉만 봐선 잘 모르겠다. 그러다 우연히 숙소 사장님이 해변에 앉아있는 걸 발견.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_- 그래도 물어보는 게 나을 거 같아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추천해 준 곳은 트립 어드바이저에도 나왔던 곳. 안심이 됐다.

 식당 앞으로 갔는데, 사장님이 추천해준 해물 파스타는 없었다. 봉골레이거나, 문어를 이용한 파스타이거나, 아님 정체가 불분명한 파스타 몇 종이었다. 뭘 먹을까 밖에서 고민하다가 일단 들어갔고, 결국 봉골레로 낙점. 그리고 생전 혼자는 절대 안 먹는 술인 와인을 시켰다. 봉골레니 나름 어패류이고, 그러니 화이트 와인으로, 1/4l 주문.

 확실히 양은 많았고, 맛도 있었다. 살짝 짰지만 빵이랑 먹으면 괜찮았다. 그러나 좀 뻑뻑하게 먹어야 하는 단점이.. 와인을 벌컥 마시고 맥주를 더 시킬까 하다가 그냥 아껴서 와인만 마셨다.



 나와서 근처에 있는 그롬(Grom)으로 들어가 또 젤라또를 먹었다. 이탈리아 마지막 저녁이라는 의미부여로 처음으로 하루에 두 번 젤라또 섭취.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있는데 사장님이 술 마시자며 불렀다. 숙소 사람 여럿과 술을 마셨는데, 사장님이 근처에서 받아온 하우스 와인이었다. 아까 저녁 식당도 그랬고, 이 와인도 입엔 맞았다. - 그렇다고 맛있게 마신 정도는 아니다. - 하루에 이렇게 많은 양의 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던가. 술자리에서는 예의 내 모드로, 한 마디도 안 하고 경청하였다.-_- 다른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고, 딱히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그런데 남자 애들 몇 명이 자꾸 재미없는 드립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끊었다. 싸가지가 없는 건지, 본인은 센스 있다고 치는 거겠지만,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얘기 주제 중 하나는 서비스업의 고충. 숙박업자(=사장님), 전직 약사, 전직 금융권 업자 등이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진짜 진상이 많았다. 사장 왈, 숙박업 하는 자기 이탈리아 친구가 한국인이 제일 매너 좋다고 하던데, 그 친구가 자기 숙소에 놀러 와서 보고선, 자기네 집에 오는 한국인과 여기 오는 한국인이 같은 사람이냐고 놀랐다고 한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한텐 굽실거리고, 한국인한텐 진상 펴는 어글리 코리안들. 자기가 돈 냈으면 어떤 것도 다 요구할 수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내 주변 사람도 다른 데 가선 그런 진상짓 하는 건 아니겠지.

 2시가 다 돼서야 술자리가 겨우 파했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얘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술자리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다크 템플러 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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