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홀로 여행 첫 날. 어제 오르비에또(Orvieto)와 띠볼리(Tivoli)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처음 결정대로 띠볼리를 가기로 했다. 오르비에또는 아시시와 좀 겹칠 거 같아서 포기. 띠볼리의 문제점은, 블로그 등을 찾아보면 빌라 데스떼까지 가는 건 잘 나와 있는데 빌라 아드리아나를 거처 빌라 데스떼 가는 법이 잘 안 나와 있는 것이었다. 좀 찾아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숙소를 나왔다. - 이렇게 안일하게 가면 절대 안 된다. -

 떼르미 역에서 B호선을 타고 뽄떼 마몰로 역까지 간 후 cotral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얘네는 버스 티켓을 티켓 매장에서 파는 게 아니라 신문이나 간단한 간식 류를 파는 매점에서 파는 게 특징. 생각해보면 예전 한국도 회수권 등을 이런 매점에서 팔긴 했구나. 그런데 문제는 티켓을 판다고 잘 써놓지 않는다는 거. 내가 진즉 잘 찾아보고, 아주머니께 설명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헤맬 뻔 했다. 로마 -> 띠볼리, 띠볼리 -> 로마 각각 한 장 사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해 이를 잘 설명할 용기가 없었다. 그냥 두 장 달라고 한 후 티켓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목적지 등이 따로 표기된 게 없다. 그냥 쓰면 되는 거 같다.

 띠볼리로 가는 게 8:40분 버스 한 대가 있고, 8:45분 두 대가 있었다. 빌라 데스떼를 갈거면 아무거나 타면 될 거 같긴 했다. 하지만 빌라 아드리아나 가는 버스가 일찍 마감된다는 걸 본 게 있어서 아드리아나를 먼저 가기로 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빌라 데스떼 행을 탔고, 내가 타려는 버스에는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여자 두 명만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갈지 모르겠고, 사람도 적었다. 기사한테 가냐고 물어보니 간다고 했다. 외국 나와서 의사소통하며 느낀 건데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필요가 없는 거 같다. 정확한 명사만 제대로 발음해주면 상황에 맞게 서로서로 알아서 잘 듣는다.ㅋㅋ 이 상황에서도, 빌라 아드리아나? - (끄덕끄덕) - 그라찌에 ... 끝. ㅎㅎㅎ

 아무튼 버스 탑승. 읽었던 글에서는 고속도로 벗어나면 금세고, 3,40분이면 간다고 쓰여 있었는데 아니었다. 고속도로 나와서 골목골목을 꽤 지나왔고, 최종 내렸을 때 보니 50분 정도는 걸렸다. 내리는 것도 아슬아슬했다. 우연히 표지판을 봤는데 빌라 아드리아나 쓰여 있었는데, 버스 가는 방향이랑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서 내려야하나 망설이던 찰나 아까 그 여자 두 명이 뭐라 뭐라 하더니 급하게 내렸다. 빌라 아드리아나라는 말은 안 들렸지만 대충 눈치 채고 나도 따라 내렸다. 좀 가다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표지판이 없었다. 그냥 직감으로 오른 쪽으로 죽 내려가 봤는데 다행히 맞았다. 가는 도중 그 여자들이 따라오나 힐끔 봤는데 안 보인다. 그래서 좀 불안하긴 했다.;;

 빌라 아드리아나는 넓고 아름다운 자연에 고대 유적지가 있는 모양새다. 온전히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서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끼려 했다면 불만족스러울 사람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난 만족. 포로 로마노 등을 못 들어가 봤기에 여기서나마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 경관 자체가 아름다웠기에 돌아다니는 맛이 있었다.


<무사히 도착>

















 빠른 걸음은 아니었지만 쉬지 않고 죽 돌아다니니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이제 문제의 시간, 빌라 데스떼를 가야 할 때가 왔다. 일단 매표소에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200미터 죽 가서 4번 버스를 타라고 했다. ok. 일단 가보자. 200미터 정도면 아까 내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이다. 시골의 작은 버스정류장이어서인지 딱히 버스 정류장이다 하는 모양새가 없었다. 표지판 하나에 교통수단 같이 생긴 그림이 하나 있을 뿐. 여기가 맞을까 하는 의심 속에 10분 정도가 흘렀나. 4번 버스가 오고 있었고 아까 그 여자 둘도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려 하는데 버스는 서려고 살짝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그냥 가버렸다.-_- 사실 내 잘못도 있다. 나도 여자 둘 눈치를 보고 이거 타는 거 맞나 결정하려 했는데 여자 둘이 별 상관없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오기에, 이 버스가 아닌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큰 패착.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4번 버스를 보낸 후 바로 후회. 앞으론 어떻게든 버스 멈추고 어디 가는지 물으리라. 여자 둘이 내가 서있던 버스 정류장을 지나 그냥 쭉 걸어갔다. 여기가 정류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그들을 따라갔다. 몇 십 미터 걸어가니 그들이 현금 인출기 쪽으로 향했다. 저 둘이 나와 같은 곳을 간다는 보장도 없고,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아까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은 꽤 지났다. 여자 둘은 안 돌아오고, 버스도 안 온다. 30분은 기다린 거 같다. 버스가 안 오면 버스 방향으로 걸어가 볼까, 버스로 5분 걸린다는데, 그럼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 아닌가, 택시는 올 생각을 안 하네, 이렇게 기다리다 버스 못 잡고 그냥 다시 매표소로 돌아가 로마 가는 버스를 물어야하나, 그 이전에 로마 가는 버스는 여기 있긴 한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이게 불편하고, 혼자 있으니 더 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중 버스 한 대가 왔다. 버스 번호를 확인하려 했는데 잘 안 보였다. 4번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일단 버스를 세우는 데는 성공. 빌라 데스떼?라고 하니 맞는다고 하며 티켓을 보여 달랜다. 시내에선 그런 거 없이 그냥 다 통했는데, 어쩔 수 없이 아까 산, 돌아갈 때 쓰려던 티켓을 써야겠네 하고 기사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티켓 펀칭을 하려는 순간, 아... 티켓 사이즈가 다르다. 안 들어갈 걸 뻔히 알면서 괜히 넣는 시도를 여러 번하며 기사 눈치를 봤다. 기사가 뭐라 뭐라 하는데 이탈리아 말로 하니 알아들을 수가 있나. 조용히 눈치를 보며 기사 뒤쪽으로 앉았다. 기사도 그냥 포기한 건지, 봐주는 건지 별 말이 없었다. 나는 도리어 다른 승객들 눈치가 보였다. 저 사람들은 날 뭐라 생각하며 볼까.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 이거 빌라 데스떼 가는 건 맞긴 한 걸까.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어디서 내려야하지. 블로그 글에 쓰여 있기론 5분정도 걸린다는데, 5분은 지났나, 안 지났나... 다행히 가는 길에 종종 빌라 데스떼가 쓰인 표지판이 보이긴 했다.

 블로그에서 본 듯한 광경이 나왔고, 승객 중 그나마 제일 관광객처럼 보이는 - 가장 어려보이는 - 여자가 내리기에 따라 내렸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겨우 빌라 데스떼 표지판을 찾았고, 이후에도 겨우겨우 찾아갔다. 확실히 지도 앱이나 지도가 없으니 헤매게 된다.

 지금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무작정 가서 버스타고, 무임승차하고, 감으로 아무데서 내리고... 만약 빌라 데스떼로 가는 버스를 안탔으면? 아저씨가 가는 도중 내리라고 했으면? 버스가 안 왔거나, 아저씨가 내리라고 해서 진짜 걸어갈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겼다면? 겁 많은 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운이 참 좋은 날이었다고 밖에는...ㅎㅎ

 빌라 아드리아나는 공원 티가 나게 공원 앞으로 철조망 같이 돼있고, 작은 입구가 따로 있었는데, 빌라 데스떼는 건물이 입구였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여기가 그 정원이 맞나 좀 걱정스럽긴 했다. 그리고 1시정도가 되었기에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간신히 찾아왔고, 무임승차에 대한 부담감이 쉽게 떠나지 않아 어딜 가서 혼자 쉽게 먹을 용기가 안 났다. 그냥 빌라 데스떼에 잘 왔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빌라 데스떼로 들어갔다.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야외 정원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 관광청 홈페이지와 많은 블로그에서 보던 사진의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확실히 여긴 사람 손 많이 간 정원 같았다. 천 개의 분수로 유명하다던데, 개수는 세보지 않았지만 아무튼 꽤 많은 건 사실이었다. 표 살 때 준 지도에 나타난 번호를 따라 36단계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솔직히 차근차근 까진 아니고 번호에 표기된 곳으로 가서 사진 찍고 바로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게 일이었다. 혼자 다니니 이렇게 빨리빨리 이동하긴 하는데, 좀 오래 생각하며 감상하는 건 줄어들 거 같다.

















 빌라 아드리아나와 빌라 데스떼를 비교하자면 남자와 여자 같다. 이런 성별 비유가 성차별적인 내용을 내포할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 같다는 건 정원 자체 성격도 그렇지만, 방문객의 반응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 갈릴 거 같다. 빌라 데스떼는 확실히 여자 취향이다. 남자는 싫어하거나 별로일거라는 건 아니고, 남자도 좋아할 테지만 여자는 거의 다 좋아할 거 같다. 좋은 보존 상태로 잘 꾸며진 정원에 꽃과 나무, 분수가 함께 하니 사진 찍기도 좋고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가 많다. 반면 빌라 아드리아나는 정원임에도 유적지 느낌이다. 많이 훼손된 건물들과 넓은 공간. 다시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다 좋아할 공간도 아닐 거 같다. 사람에 따라 돌덩이 보러 또 왔냐며 투덜거릴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런 유적지와 들판 같은 자연, 산책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빌라 아드리아나가 더 취향에 맞을 수 있다.

 빌라 데스떼에서 나와 어디서 밥 먹을까 두리번거리던 중 한 식당의 종업원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른 데 찾기도 귀찮고 해서 그 식당으로 결정. 목도 말라 맥주를 먼저 시키고 제일 싼 피자 하나를 주문했다. 역시 이탈리아는 피자가 배신하는 일이 없다.ㅎㅎ 여느 이탈리안 식당처럼 자릿세가 부과될 줄 알았는데 맥주와 피자 값만 받아서 더욱 만족.ㅋㅋ

 로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이 정류장은 블로그에서 사진으로 본 것도 있고, cotral이라고 명확히 쓰여 있어서 찾기 쉬웠다. 갈 때는 여기 올 때보단 시간이 덜 걸렸다.

 로마 시내 어디를 갈까 하다가 갔던 곳 중 못 봤던 곳이나 밤에만 봤던 곳을 죽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일단 바티칸으로 향했다. 그저께 시간이 늦어 지하를 못 본 것도 있고, 동생이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였다. 전에는 바티칸 박물관을 먼저 들어가느라 짐 수색을 당했는데, 오늘도 성당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임에도 짐 수색을 당했다. 나름 국경 통과 지역이라 그런가보다.

 먼저 기념품 가게로 갔는데 한국인 수녀님이 안 보였다. 그리고 동생이 부탁한 20유로짜리 묵주도 안 보였다. 묵주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그리고 바티칸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오늘도 무슨 행사가 있는지 삐에따 쪽에 천막이 쳐있었고, 성당 앞쪽은 들어갈 수 없게 낮은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도 못 내려가나 했는데 다행히 내려갈 순 있었다. 내부의 성인들 묘를 관람 후 성당 밖으로 나왔다. 사실 바티칸을 다시 찾은 가장 큰 이유는 광장을 보고 싶어서였다. 전에는 수요 오전 미사 때문에 의자가 정렬돼있고, 사람이 서 있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도 앞쪽은 의자가 정렬되어있었고, 뒤쪽만 의자가 좀 치워져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려 천사의 성으로 향했다. 야경투어 받을 때 가이드가 알려준, 사진 찍는 포인트로 가서 사진 찍고 바로 판테온(Pantheon)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이 꽤 말랐지만 숙소 가서 물 마시리라는 각오로 참고 걸어갔다. 바티칸 쪽에서 버스 타고 베네치아 광장까지 갈까도 생각했다가 아까 천사의 성 오던 도중 버스가 제대로 출발 안 하는 걸 봤기에, 표 검사하나 하는 불안함 마음도 있고 해서 걷기로 했다. 바티칸에서 숙소까지 걸으면 걸을 만 하다는 동생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천사의 성, 산탄젤로 성(Castel Sant'Angelo)>


 판테온은 고대 건물 중 진짜 보존 상태가 좋았다. 큰 돔이 있는 예배당/묘지라 건물 내부는 벽면을 따라 무언가가 있었고, 가운데는 텅 비어있는 구조였다. 확실히 라파엘로의 무덤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었다.


<판테온 천장>



<라파엘로의 무덤>



 베네치아 광장으로 향하던 중 커 보이는 성당(산티냐시오 성당, Chiesa di Sant'Ignazio di Loyola a Campo Marzio)이 눈에 띄어 일단 들어갔다. 역시 직감이 맞았는지, 꽤 화려한 성당이었다. 역시 이탈리아 성당은 스페인 성당과 달리 대리석의 미학이었다.



<마치 천장에서 튀어나온 거 같다.>







 통일 박물관 뒤쪽으로 돌아가 연꽃 바닥 사진을 다시 찍고 포로 로마노 전경도 다시 한 번 찍었다. 그리고 저번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꽤 남아 포로 로마노를 돌고, 원형 경기장을 통과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을 본 후 숙소 방향으로 향했다. 계속 걷다보니 크록스마저도 발이 아팠고, 걸음 속도도 느려졌다. 지도 상에 콜로세움 옆에 유적지가 있어 가봤는데 별게 없었고, 그냥 공원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꼬르도나따(Cordonata) 계단>


<깜삐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가운데 보이는 청동상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전차경기장 터인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nstantino)과 콜로세움(Colosseum)>



 너무 목이 말라 매장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샀다. 샤워하는 동안 한 캔은 냉동실에 얼렸다가 샤워 후 꺼내 마시면 진짜 시원할 거 같았다. 어제 봐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용으로 나온 하이네켄이 있어 이걸 샀다. 그러나 샤워 후 마셨을 때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아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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