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에 당하다

Posted 2010. 11. 27. 23:09

화요일 1시쯤. 점심 먹고 왔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너 뭔 일 있냐?” “아뇨.” “엄마랑 통화 돼?” “아뇨, 안 해봤는데, 왜요?” “아니, 계속 통화가 안 되네. 전화 받다가 끊고...”


전화를 끊고 엄마한테 전화를 해 봤다. 통화 연결이 됐는데 아무 소리가 안 나더니 갑자기 끊겼다. 다시 전화를 하니 통화 중. 동생한테 메신저로 어디냐고 물어보니 학교란다. 집 나오면서 엄마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별 일 없었다고. 30분 후 다시 전화를 해 봤는데 역시나 통화 중. 약간 걱정이 됐다.


한 시간 쯤 넘어서인가, 아빠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야, 너 어디야.” “회사죠.” “별 일 없지? 누구한테 붙잡히고 그런 거 아니지” “네? 아뇨. 왜요?” “아냐, 일단 끊어.” 전화 너머로 ‘봐, 얘 멀쩡하다니깐.’ 하시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는 마음에 엄마한테 통화 해 보니 정신없어 하시면서 몇 마디 한 후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알고 보니 보이스 피싱에 당하신 것. 사건은 이랬다. 집 전화로 누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받았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저, **(내 실명)이 직장 동료인데, 얘가 일 하다가 머리를 다쳤어요. 바꿔드릴게요.” “(울먹이며) 엄마, 난데, 나 사실은 다친 게 아니라 깡패들한테 지하로 끌려왔어. 살려줘...” 다른 사람으로 바뀌더니, “그렇게 자세히 말 하지 말랬지.” 하면서 구타 소리... 그 놈은 돈 안 보내면 심장 빼내서 팔아버리겠다고 협박... 엄마는 그렇게 해서 500만원을 입금하셨다.


조금 있다 아빠가 집에 도착하셔서 그나마 다행으로 추가 입금은 막을 수 있었다. 엄마는 옆집에서라도 돈을 빌려 500 더 붙이시려 했다고... 핸드폰은 왜 통화가 안 됐냐고 하니, 나한테 전화온 후 바로 휴대폰 베터리 빼버렸다고... 그 놈들이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어쩐다고, 빨리 베터리 빼버리라고 협박했다고.....


보이스 피싱... 무섭구나...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대. 뭐, 그 정도 준비성(?!)은 있으니 그렇게 전화를 했겠지. 그런데 목소리 사칭까지 하다니... 내가 엄마한테 나중에 어떻게 자식 목소리도 못 알아듣냐고 물으니, 진짜 비슷했다고 하셨다. 그 놈들이 내 목소리를 알고 비슷한 놈을 데려와 사칭한 건지, 엄마가 놀래셔서 잘 못 들으신 건지, 뭐, 후자겠지만... 목소리 사칭, 대범하네. 목소리 다르다고 걸릴 게 뻔할 수도 있는데...


사실, 조금만 따져봐도 저들의 수법엔 허점이 많다.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되는 데, 엄마는 나를 바꿔주는 순간 당황하셔서 홀딱 넘어가셨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정신 차리고, 이게 쉽지가 않지. 대부분의 사람도 얘기하는 거지만, 이럴 땐 자식한테 바로 전화해보는 게 정답이라고 한다. 통화만 되면 상황 끝이니. 그런데 가끔은 자식한테 전화 못 하게 하려고 저 놈들이 자식 핸드폰으로도 전화를 계속 걸어 통화를 방해한다고도 하더군.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식 군대 보낸 사람들은 더 쉽게 당할 거 같다. 바로 연락할 데도 없고, 까딱하면 그냥 당하는 거겠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도 말하길, 저거 잡기 힘들다고... 뒤늦게 확인해보니 발신번호도 001로 시작. 잡기 힘들겠지.


엄마는 진짜 많이 놀라셨다. 그 놈들과 전화 끊고 한 시간은 우셨다고 한다. 자식 걱정에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모든 사기가 그렇긴 하지만, 보이스 피싱... 참 못된 범죄다.


그리고 또 하나... 개인정보 유출... 이거 진짜 여러 가지로 사회 문제를 낳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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